in

월간 윤원보 vol.13 "난 모르겠어"(1부)

you need more fantasy, 2021, oil on canvas, 117 x 91cm

1.

 

– “원보씨, 내가 최악의 보스인가요?”

– “아, 네”

 

2.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이십 대의 무더운 어느 날, 동네 뒷공원에 있는 농구 코트에서 하릴없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높은 고도에 있는 공원은 농구를 하기도 전에 기진맥진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어서, 산소가 희박한 고지대의 남미 축구장으로 원정을 떠나는 것 같았다. 당시 우리들은 거의 대부분이 백수였기에 자주 만나서 농구로 하루를 때웠는데 땀을 흘리는 일 말고는 별달리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땀을 흘리면 답답한 속이 좀 풀어지고는 했다.

우리보다 앞서 농구 코트를 차지하고 있는 팀들의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는데, 경기가 끝났다 싶으면 여지없이 후반전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그것은 오락실에서 동전을 손에 쥐고 앞사람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뒤에 서 있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호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오락기 위에 터억하니 올려놓는, 게임 속의 악당조차도 ‘어,어, 이봐 뭐하는 거야?’라고 할 정도로 상도덕이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에 버금가는 행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부조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소위 ‘밀어내기’라는 동네 농구만의 룰이 생겼다. 앞서 농구코트를 차지 하고 있는 팀에게 도전을 해서 이기는 팀이 코트를 차지하고, 대신 다른 팀의 도전을 받아서 이기면 계속해서 그 코트를 차지할 수 있는 룰이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우리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이 농구를 했는데, 그때의 하루 일과를 나열하자면 이렇다. 우선 나 같은 경우는 엄마에게 학교에 일찍가서 공부한다고 하고 도시락을 받아서 새벽 6시쯤에 스쿨버스를 탄다. 물론 공부는 하지 않는다. 도착하면 6시 40분쯤 되는데 가방은 교실에 던져놓고 아침 1교시 시작할 때까지 농구를 한다. 수업이 끝나면 10분의 쉬는 시간이 있는데 점심시간 전까지 약 3번의 쉬는 시간에 농구를 했다. 물론 공부는 하지 않는다. 점심을 빨리 먹고 농구를 하고 다시 저녁 시간까지 4번의 쉬는 시간에 농구를 한다. 저녁밥을 먹고 야간자율학습시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40분 동안 농구를 한다. 물론 공부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야자를 튀고 농구를 한다. 그리고 다음날 선생님에게 걸려서 엉덩이 몽둥이 찜질을 받는다. 찜질을 받아도, 역시 공부는 하지 않는다. 이게 우리의 고등학교 3년 동안의 하루 일과였다.

그런 덕분에 우리는 꽤 손발이 잘 맞아서 공원에 있는 농구 코트에서 만큼은 무서울게 없었다. 하지만 농구공이 없는 현실은 튜브 없이는 수영을 못하는 꼬꼬마에 불과했다.

농구 게임이 끝나고 ‘그림도 잘 안 풀리고 뭘 하면서 살아야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날 보며 친구가 말했다.

– 원보야, 너 책 좋아하니까. 도서관 사서해보는거 어떠냐고 경민(친구의 여자친구, 현 제수씨)이가 얘기하더라.

– ‘도서관?…..!’

바보같이! 대학생때 근로장학생으로 모교 도서관에서 알바를 했는데, 그때 데스크에 앉아있는 누나가 사서였구나! 막연히 도서관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그게 무슨 직업인지는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신 차리라는 이명숙 여사의 스매싱이 내 뒷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부랴부랴 사서교육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3.

나는 대학생 때 학과 공부를 열심히 했다. 별로 놀지도 않았다. 내심 장학금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나보다 더 열심히 한 동기가 있었다. 어쨌거나 3학년 2학기까지는 전공과목을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날 고개를 들어보니 ‘이거 억울한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4학년부터 놀기 시작했다. 남들은 저학년 때 놀고 4학년 때 취업을 생각하며 공부에 매진하는데 나는 그 반대의 경로를 탔다. 당연히 학점도 10점 만점을 받은 다이빙 선수의 아름다운 수직선 만큼이나 거침없이 떨어졌다. 그러다 방학때 조교에게 전화가 왔다.

– “아니 수강생이 수백명인데 너만 F학점이야. 졸업이 안돼. 근데 전화도 안하냐?”

– “아, 네”

걱정이 된 조교의 전화 덕분에 리포트를 다시 써서 F는 면했지만 학점은 처참했다. 당시에 나는 그림을 배우고 있었기에 그 사실만으로도 안도를 했던 것 같다. 때문에 토익같은 것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고 작업실에서 취업박람회를 중계하는 뉴스 영상을 강건너 불구경 하듯이 바라봤다. ‘어이, 거기 불난 거 같은데’

불은 내 등 뒤에서 시작해 내 미래로 서서히 번져나갈 것임을 나는 자각하지 못했다.

약 8개월간의 준비를 하고 사서교육원에 합격을 했다. 나중에 행정실에 내 점수가 궁금해 문의 해보니 행정실 선생님이 피식 웃으며 이야기 했다.

– “원보씨는 턱걸이로 붙었어요, 학점만 보면 불합격인데, 면접은 만점이어서 붙었네요”

– “아, 네”

아마 그날 전화를 해준 조교가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불합격을 받았으리라. 감사합니다.

고백하건데 기대와는 달리 문헌정보학 공부는 재미없었다. 뭔가 정리가 안 된 학문처럼 느껴져서 불완전해 보였다. 이를테면 메타학문으로서의 기능은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깊이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도서관경영론이나, 분류를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보다 재미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게 준사서자격증이라는 알량한 튜브를 가지고 취업이라는 망망대해로 나아갔다. 불 구경꾼에서 졸지에 당사자가 되고 보니, 정말이지 불은 어쩜 이리도 잘 타는지 고기라도 구울 판이었다. 이력서를 넣는 곳마다 매번 2도 이상의 화상을 입기는 했으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내 한 손에는 사서자격증이 들려있었고 다른 손에는 붓이 있다. 그럼 이걸로 예술쪽 도서관을 알아보자고 생각했다. 얼마안가 우연히 00미술관에서 계약직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았다. 자기소개서에는 사서로서의 비전과 그림을 그린 경험을 이렇게 저렇게 엮어서 그럴듯 하게 써갈겼다. 그것은 주차요원을 뽑는데, 도시계획을 얘기하고 있는 거랑 비슷했다. 서류를 통과하고 마침내 면접까지 합격을 했다. 출근은 다음주부터! 이렇게 큰 미술관에서 일을 하게 되다니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1부 끝.

Credit 글작가, 화가 윤원보 | 월간 윤원보
Web Editor PICTORIUM

What do you think?

26 points
Upvote Downvote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Loading…

0

[사탕고양의 재료탐구생활] 수채화 그라데이션을 쉽게 하도록 도와주는 블랜딩 미디엄

(공모전) 호텔 스카이파크 아트 갤러리 전시 작가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