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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칼럼] ‘흙멍’ – 박수근 전시 리뷰

흙멍

 덕수궁(경운궁)에는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이 있다. 여기에서는 근대 한국 작가들의 작품전이 주로 열리는 편인데 화가 박수근 전시전이 열렸다. 전시제목은 ‘ 박수근 :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다.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 중에 내 기억 속의 ‘수근’이란 이름은 셋이다. 박수근, 김수근 그리고 이수근. 박수근은 화가이고 김수근은 건축가 그리고 이수근은 개그맨이다. 직업상 이들은 예술, 기술, 예능이란 직능에 각각 속한다.

 그리고 세가지 모두의 공통점은 ‘창의적 재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손재주가 좋아서 잘 알려진 오브제를 ‘재현’한다거나 여기저기 흩어진 문장의 조각들을 엮어내어 글이나 말로 ‘구현’하는 노동과 다르다.

 창의적 재주를 부림은 그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지는 못한다. 창의적 작업은 기존의 것들을 조합하여 새롭고 낯선 것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의 원동력은 시선이다. 남다른 안목과 관찰력은 자기만의 시선을 만들 수 있는데, 그것은 천재의 몫이 아니라 자기와 세상을 고민하는 자의 영역이자 결과라고 본다.

 전시는 4개의 관에서 진행되었다. 작가의 일대기를 펼쳐놓은 전시들이 대개 그렇듯 마치 편년체 역사서처럼 초기부터 말년까지의 것들이 그의 생애와 맞물려있는 시대별로 선보였다.

 그는 질곡의 시대를 겪어낸, 전후의 한국사회를 제대로 담아낸 ‘국민화가’ 또는 가난과 함께 했던 ‘이웃을 사랑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들인 빨래터, 앉아있는 여인, 노상 등에서 이를 엿볼 수 있는데 주로 일상의 주변에서 관찰한 것들을 화폭에 담았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화가 박수근은 어떤 관찰적 심상과 예기 藝技를 가졌을까? 나는 어깨를 웅크린 사람들과 흙을 보았다. 노상에 앉아서 쉬건 육체 노동을 하건 간에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몸을 움츠린 것일까?

 그의 작품 초기 영향을 주었던 화가가 만종과 이삭줍기를 그렸던 밀레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을 응시하거나 허리를 젖히는 자연스런 몸짓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게 궁핍과 가난을 일상으로 겪었던 이들의 모습이라면 몸이 마음을 따라간다는 설이 맞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대화는 하는 듯하나 입과 눈은 보이지 않는다. 표현의 감성이 미약하면 대개 눈과 입을 크게 열고 벌리지 않는다. 그걸 관찰한 것일까? 특히 그가 그린 나무들은 쓸쓸하다 못해 처연하다. 

 그런데 전시 이름에 아이디어를 준 박완서의 소설 ‘나목’은 엄혹한 겨울을 보내는 벌거숭이 나무처럼 참혹하고 지난한 시절을 보내지만 참고 견디면 고목이 아니기에 언젠가 새 싹의 돋음을 맞이할 수 있는 나목처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가진다(미군 PX 초상화부에 근무하는 스무 살 여성의 시각에서 담아낸 이 작품은, 박완서 작가가 스무 살에 PX 초상화부에 근무하며 실제로 함께 근무했던 故박수근 화백을 떠올리며 쓴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박완서의 시선을 생각하며 그림들을 다시 보았다. 

 흙이 보였다. 그의 그림들은 거칠고 투박한 질감이지만 다소 따뜻한 색감도 가진 덕에 순덕함과 황폐함이 같이 하고, 토속적 정서와 궁핍의 미덕이 한 보따리에 싸서 꾸려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그 거칠고 울긋불긋한 질감에 녹여진 색상에서 유기분이 모두 빠진 썩은 흙이 아니라 언제라도 새 생명체를 살려줄 것 같은 건강한 흙을 발견했다.

 그는 거창한 생명사상이나 장중한 프로테스트 정신에 입각한 혁명적 예술가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 일상, 자연을 그저 묵묵하게 화폭에 담아낸 은둔의 장인 같은 존재다. 

 그의 그림 속 흙을 한동안 멍 때리듯 쳐다보았다. 갑자기 원형의 회오리 불꽃이 일어 포탙portal이 열리면서 나를 흙의 고향으로 잡아당길 것 같은 마법은 생기지 않았다.

 묵직한 도록을 한 권 샀다. 그리고 속으로 “그래 흙멍은 혼자서 천천히 편하게”. 


PS. 지금처럼 빨리 마르는 아크릴 물감이 없던 시절에는 소위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덧칠을 하는wet-on-wet 기법 등을 이용하여 입체감과 화려한 색채감을 캔버스 전면에 드러내는 시도가 유행했었다.

 반면 박수근이 사용한 기법은 재질이나 소재 material을 뜻하는 미술 용어인 마티에르 matière었다. 고유의 재질감을 가리키는 말이자 작품 표면의 울퉁불퉁한 질감 혹은 작가의 필치나 물감에 따라 야기되는 표면의 효과를 이용하여 의도한 미적 효과를 연출하는 기법을 말한다.

Credit 에디터 Jisoo Kim
            리빙문화 칼럼리스트. 가구와 인테리어를 담은 리빙문화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소개한 <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의 저자

Web Editor PICTO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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