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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칼럼] 정리와 어수선함이 공존하는 방

 엊그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중 기자분이 물었다. “아시죠~? 클러터코어. 요즘 스타일이 너무 미니멀인지라 인스타를 보면 죄다 비슷비슷하잖아요? 그래서 앞으로 클러터코어처럼 다른 방향의 스타일이 대세가 될 수 있을까요?”

 클러터코어? 첨 듣는 단어였다. 심지어 클러터커로 들렸다.

 “기자님 죄송한데.. 제가 모르는 용어 같아요~(많이 창피한 상태). 간단히 설명 좀…”

 기자님 설명과 여러 정보들을 정리하자면, 클러터코어 cluttercore는 한마디로 ‘정리된 어수선함’이란 뜻이다. 그래서 다소 형용모순이자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역설적인 말로 들린다. 우선적으로 모든 것을 비워내고 깔끔하게 정리정돈된 미니멀리즘에 대비되는 맥시멀리즘을 표방한다.

 좀 더 자세히 기술하자면, 물려받은 것 혹은 자신이 좋아해서 사거나 선물을 받은 것 등 온갖 잡다한 것들을 나름의 컨셉과 맥락을 가지고 (보물창고에 쌓인 금은보화처럼) 한 공간에 집중시켜 모아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다락방 여러 켠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로 맥락 없이 군집을 이룬 잡동사니 물건들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클러터코어에는 나 만의 취향과 스타일이 확실하게 보여지는 느슨한 조합과 규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리하고 보니 나의 신간 ‘가구, 집을 갖추다’의 에피소드로 쓰다가 드롭을 시켰던 한 꼭지가 생각났다.

 

 분더카머 Wunderkammer  ‘호기심의 방’.

 16~17세기에 서구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은 자신들이 아끼는 물건들을 모아둔 일종의 방(수장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분머카머라고 불렀다. 독일어로는 분더카머 Wunderkammer, 프랑스에서는 카비네 드 큐리오지테 Cabinet de curiosite 그리고 이탈리아어로는 스투디올로 studiolo라 불렀다. 

 영어로는 당연히 ‘cabinet of curiosities’로 부른다. 여기서 캐비닛 cabinet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무엇인가를 담거나 보관하는’, 즉 (서랍이 달린) 수납기능을 가진 가구를 말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방 room이란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뭐 놀랄 것도 없다. 화장실 toilet도 원래는 옛날 여성들에게 화장대로 불렀었고, 잡지magazine도 창고warehouse를 뜻하는 아랍어 makzhan에서 유래했으니까.

 지금의 박물관과 미술관의 효시가 되는 분더카머는 당시 체계적인 분류법 classification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건 18세기 이후에나 가능했던 이야기다(현재도 (그린)택소노미 taxonomy(분류)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래도 나름 다음과 같이 분류되어 있었다.

 


 

1. naturalia  자연에서 나오거나 괴물형태를 가진 희귀한 종들. ex. 머리가 두 개 달린 개 

2. artificialia 사람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것, ex. 골동품, 예술작품

3. exotica 이국적인 것들, 먼 곳에서 공수한 식물이나 동물들

4. scientifica 천문기술, 시계, 자동화 기계, 과학적 도구 같은 자연을 능가하는 인간 능력의 증거들

 네 가지 분류의 제목이 모두 라틴어다. 가만 보니 자연환경naturalia은 오늘날의 자연사 박물관의 토대 같고, 인공물artificialia은 미술관 그리고 진기한 것exotica은 동물원과 식물원 마지막 과학scientifica은 과학전시장 혹은 CES같은 과학기술박람회의 효시가 아닐까?

 이처럼 호기심의 방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품은 물론이거니와 17세기 해상무역의 발달로 세계 각국에서 건너온 별의별 진기한 것들과 예술품들로 속속들이 채워졌다. 

 

 음.. 16세기 귀족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내 취향의 잡동사니를 꽤 많이 안고 사는 편이다. LP. CD. DVD는 아직 버리거나 엿을 바꿔 먹지 않고 엑기스들을 추려서 소장하고 있으며, 2천 권 안팎의 이런저런 잡스러운 책도 집과 회사에 분산시켜 놓았다. 무엇보다도 다이어리, 작은 악세서리, 피규어, 각종 리미티드 기념품 등을 사무실 한 켠에 늘 모셔두었으며, 좋아하는 위스키와 만든 (자가음용) 술 역시 나의 최애 콜렉팅 물건들이다. 

 그런데… 무엇봐다도 뭔가 일관성 있는 개념과 의미를 부여한다면서 늘 잡다하게 말이 많고 쓸데없이 글이 긴 (심지어 PS도 여러 개 달아 놓은 ) 나의 말과 글이야말로 맥시멀리스틱한 클러터코어가 아닐까?

PS 1 며칠 전 갔었던 카페 몽테뉴의 내부 풍경이야말로 분더카머 기반의 진정한 클러터코어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뭔가 쥔장의 취향이 곁들여진 소규모 카페를 가보면 온갖 것들을 가져다 놓긴 했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인위적인 티가 나거나 분실(?)을 생각해서인지 정리정돈이 잘되어있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는 아니다~. 그런데 나름 질서와 문법과 경향이 있다.

PS 2 맥시멀리즘 maximalism은 (주로 패션 분야에서) 원색적인 화려한 색상과 과감하고 과장된 장식, 풍성한 부피감 등 과장된 조형수단으로 표현하는 문화예술적 경향이라 한다. 그렇다면 글램록의 기수 데이빗 보위나 엘튼 존 역시 일종의 맥시멀리즘 패셔니스타로 보면 되겠다.

PS 3 가구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 furniture는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중세 때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즉 영주들의 시대에 붙여진 이름인데, 그들은 자신의 땅 내에 몇 개씩 저택들을 소유한데다가 다른 곳으로 옮길 때 가구들도 이동시켰다고 한다. 그럼 당연히 조립과 분해가 쉬워야 한다(물론 이케아처럼 복잡하면 안되고 말이다).

 그래서 ‘제공하다, 비치하다’란 의미를 가진 furnish(프랑스 舊語는 forneture)가 furniture란 단어로 완성된 것이다. 마찬가지다. ‘움직이는, 이동하는’의 뜻인 mobile와 같은 이탈리아어 mobil은 현재 가구를 의미한다. 그런데 17~19세기에 영어로 된 cabinet이 더 대중적으로 쓰였던 이유는 당연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위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Credit 에디터 Jisoo Kim
            리빙문화 칼럼리스트. 가구와 인테리어를 담은 리빙문화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소개한 <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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