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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칼럼] 트렌드 읽기

모잡지로부터 ‘트렌드를 읽는 법’에 관한 원고를 청탁 받았다. 일반인 보다는 주로 마케터, 브랜드 매니저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분들이 구독하는 전문 매거진이라 내가 실제로 업무에 활용하는 방법론을 기술하길 바랬다. 

그게 뭘까? 
잠시 고민을 했다. 어쩌다  한 가지 일에 종사한 지 18년이 되어가다 보니 그 방법론이란 것이 문서화된 매뉴얼보다는 내 의식과 몸에 관성화된 것에 더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걸 찾아내는데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 내 머리를 망치로 때리듯, 강한 임팩트를 선사했던 뭔가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10년 전 그리고 현재에도 내게 유효한 ‘트렌드 읽기’의 바탕에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트렌드 사회학자인 기욤 에르네의 저서 ‘파리를 떠난 마카롱’과 세계적인 트렌드 전문가 헨릭 베일가드의 ‘트렌드를 읽는 기술 Anatomy of a Trend’이다. 

두 권의 책은 ‘트렌드 사회학 trend sociology’을 기반으로 한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트렌드라는 사회적 현상을 사회학이란 망원경으로 조망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그것의 본질, 맥락, 이해 그리고 예측을 밝혀내고 제시하는 것 말이다. 물론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책의 내용과 전개는 사뭇 달라서 ‘이해’와 ‘실제’와 같은 상호보완이 된다. 

그 중 한 권인 ‘파리를 떠난 마카롱’을 소개한다.

이 책은  사회심리학 혹은 기호학 입문서를 읽는 듯한 착각을 준다. 트렌드의 역사, 기원 그리고 원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대니엘 벨, 데이비드 리스먼, 조지프 슘페터, 페르디낭 드 소쉬르, 롤랑 바르트, 장 보드리야르, 앨프리드 크로버, 소스타인 베블런, 에드몽 고블로, 부르디외, 리처드 도킨스 등 사회학, 기호학, 인류학, 심리학, 철학, 진화생물학에 있어서 당대의 거장들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의 분량이 방대하거나 내용이 아주 복잡하고 난해하지 않다. 마치 ‘오캄의 면도날’ 마냥 군더더기를 커팅하고 핵심을 도려내어 꼭 필요한 이야기만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략하지만 수박 겉 핥기 마냥 지식의 나열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시니피앙(소리,기표)과 시니피에(뜻,기의)이론을 보자. 

깊은 연인 관계에서 ‘반지’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반지를 건네는 행위에서 반지는 목적이 아닌 수단인 시니피앙(기표)이며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will you marry me?’라는 의도가 시니피에(기의)가 된다. 즉 어떤 사물이나 이름은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와 결합해서 하나의 기호 記號를 형성한다.  

이를 최근 뉴스거리로 심심찮게 등장하는, ‘오픈런’이라는 트렌드에 접목시켜보자. 명품 혹은 리미티드 굿즈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섰다가 매장 오픈 후 뛰어들어가는 행위’를 시니피앙이라 한다면 그것을 ‘구매(획득)함으로써 가지는 우월한 만족감’이 시니피에가 되는 것이다. 

알다시피 오픈런은 요즘 가장 핫한 mz세대의 재미있는 놀이이자 트렌드가 되었다. 이점 역시 책에서 언급한 리차드 도킨스의 밈meme이론으로도 설명이 된다. 널리 확산되는 바이러스가 생물학적 숙주세포에 기생하듯이 문화의 전달에도 복제 역할을 하는 매개물, 즉 숙주가 필요한데, 인간의 행동은 정신을 지배하는 소프트웨어인 밈meme이란 문화유전자 혹은 모방자에 의해 조정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 개념은 1976년도에 발간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일종의 학술적 용어인데 무려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시대에서 대중적인 트렌드 용어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오픈런과 마찬가지로 신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트렌드로 명품구매가 있다.

명품의 원어는 럭셔리 굿즈 luxury goods 즉 사치성 제품이다. 90년대에 들어와서 국내 시장에 명품 브랜드들이 본격적으로 진출을 시작했는데 워낙 고가인데다가 사치luxury라는 단어가 갖는 느낌이 좋지 않아서 고안해낸 단어가 명품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이러한 고가 제품 구매의 열망 그 본질은 ‘모방적 경쟁’에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그 중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해도 한 번도 과시적 소비를 하지 않는 사회계층은 없다’라고 주장한 소스타인 베블런이 있다. 그는 ‘과시적 소비’를 경제적 우위를 나타내는 표식이자 자신의 소유물을 통해 ‘자기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경쟁의 일환으로 해석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매할 때 ‘승차감’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요즘에는 ‘하차감’ 역시 중요하다. 이는 차에서 내릴 때 신체적으로 힘들이지 않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에서 내릴 때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에서 받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일종의 과시다. 달리 말해서 어떤 이들에게는 차의 성능보다 이름값 혹은 멋진 디자인 등이 더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물론 모든 차량에 한해서가 아니라 프리미엄급 이상의 차에 한해서다. 그래야 알아주니까 말이다.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는 1899년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사실 그가 지목한 대상은 대중 다수가 아니라 책 제목 그대로 유한계급 그러니까 당시 근대사회계급의 꼭대기에 있었던 상층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점은 100년이 더 된 현재 우리사회에는 상류층은 물론 모든 계층에게 무리 없이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정말 시대적 트렌드와 무관한 명불허전의 이론인 셈이다. 

물론 ‘샤테크’라 불리우는 샤넬제품구매와 같이 명품을 주식, 암호화폐, NFT 처럼 매도나 양도 시 차익이 실현되는 거래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이에 동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파리를 떠난 마카롱’은 트렌드를 여성, 패션지에서 선보이는 상업적 유행이나 감각적 라이프스타일의 일환으로 바라보고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본질과 사회 구조의 맥락을 짚고 따지면서 사회학적으로 깊고 다양한 통찰을 선사했다는데 의의가 있는 책이다. 그래서 트렌드를 중요하게 다루는 마케터, 브랜드 매니저 같은 이들에게 더없이 값진 지식을 선사한다. 

 

PS ‘파리를 떠난 마카롱’을 처음 접했을 때(사실 굴지의 해외 브랜드 기업에서 홍보마케터로 일하던 아내가 후배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었다.) 제목만 보고 오해를 했다. ‘아~ 디저트 간식 마카롱이 어떻게 세계적인 트렌드 음식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책이구나’하고 말이다. 물론 책에도 마카롱이 언급되지만 그걸 다루는 내용은 전체 분량의 ‘새발의 피’정도다. 여하튼 이 책에 감명을 너무 받은 나머지 2012년에 출시한  ‘두루마리 휴지 케이스’의 이름을 ‘마카롱 휴지 케이스’로 지었다. 일단 예쁜 이름에 철자가  짧고 발음하기가 좋고 기억하기에 용이하니 제대로 주인을 만난 이름이 되었다.

Credit 에디터 Jisoo Kim
            리빙문화 칼럼리스트. 가구와 인테리어를 담은 리빙문화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소개한 <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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