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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칼럼] 가로수길 2022

 강남 신사동의 가로수길은 현대고등학교 건너편 왕복 2차로의 압구정로 12길에서 도산대로13길로 이어지는, 은행나무가 세워진 약 680미터 길이의 도로를 말한다. 그런데 2020년부터 법정 도로명을 진짜 ‘가로수길’로 변경했다.

 알다시피 가로수길은 세로수 혹은 새로수 길을 곁에 둔다. 그래서 범가로수길은 (나의 뇌피셜에 의하면) 도산대로의 가로수길 진입로를 정면으로 둘 때 동쪽의 롯데 하이마트 압구정점, 서쪽의 신사역 6번 출구 앞의 우리은행 그리고 후면 동쪽의 현대고등학교 건너 우리은행과 대략 서쪽의 라 까사 서울 이렇게 4개의 꼭지점을 연결한 4면 안쪽의 지역을 말한다.

 오랜만에 이 곳을 마실 삼아 둘러보았다. 9년 전 세로수길에 매스티지 본사가 있었을 때는 점심, 저녁은 물론이고 비즈니스 미팅과 개인적 여흥도 여기서 주로 보냈던 터라 가상의 4면 벽에 갇힌 가로수길 요새의 미로 같은 골목길과 각종 스팟을 꿰고 있었다.

 
 가로수길 나들이는 신사역 6번 출구 뒤에 위치한 18층 규모의 대형빌딩 신사 美타워에서 출발하면 좋다. 8번 출구에서 가까운 원래 진입로부터 시작하면 앞서 말한 동서남북 꼭지점을 들르기도 뭐하고 왔다리 갔다리 걸음을 반복해야 하니 말이다.

 한남대교 방향으로 난 큰 길을 걷다가 우측으로 들어서면 강남시장의 뒤편 골목길이 나온다. 이 시장은 제법 오래되었다. 1974년 개설된 상설재래시장인데 건물 내부 1,2층에 위치해있다. 나머지 층은 거주가 가능한 아파트다. 당시에는 나름 세련되었던 주상복합아파트였던 셈이다.

 계속 걸어본다. 맛집 블로거 레이니 rainy가 극찬한 중화음식점 ‘송쉐프’가 나오고 대한민국 투표용지의 절반을 만든다는 무림제지 본사도 보인다.

 가로수길 뒤편 서쪽 점인 라 까사 서울에 이르러 우측으로 돌면 가끔씩 들렸던 맘모스 대중 사우나가 보인다. 한창 물(비즈니스) 들어올 때 여기저기 모습을 보여야 해서 때 빼고 광 냈던 곳이다.

 에스모드가 나타났다. 1989년 설립된 이 학교는 패션 전문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졌는데 파리 에스모드의 분교인 셈이다.

 술집 ‘개미집’이 보인다. 이 집의 시작은 독특했다. 대중들에게 싱글몰트위스키가 낯설었던 10년 전 막걸리에 맥캘런 싱몰 위스키를 소량 믹스한(눈 앞에서 병을 들고 시전했음) 탁주를 비싼 값에 팔았던 것이다. 지금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나름 한 방이 있다는 것인데 그 별난 막걸리 때문일까?

 소위 세련되고 트렌디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F&B 가게들이 선보이는 지점은 지금부터다.

 마치 하얀 캔버스 같은 나이키 조던 건물의 파사드와 더불어 명징한 원색의 가운을 차려 입은 대형 건물들이 많았다. 이는 새로수길을 알차게 채웠던 작지만 엣지있는 카페와 음식점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범가로수길에도 책과 관련된 곳이 있다. 강남출판연구소와 알라딘 중고서점이다. 알라딘은 몇 해전 ** 곱창집 사건으로 유명했던, 지금은 전체 층을 할리스커피가 임대한 그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다.

 중고 책집에서의 득템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절판된 명작을 발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형서점에서 아직도 절찬리에 판매하는 스테디 셀러를 싼 값에 구하는 거다. 나는 EM 번즈의 ‘서양문명의 역사 3권’을 샀다. 이 책은 현재 절판되었고 같은 이름으로 나온 다른 저자의 책이 시중에 나와있다. 완전히 다른 책인 것이다.

 뒤편 동쪽 꼭지점인 우리은행 안 쪽 골목에는 그 유명한 광림교회가 있다. 교회에 부속건물로 대형아트센터가 존재한다. 압구정 인근의 소망교회와 함께 규모와 신도수에서 쌍벽을 이룬다.

 교회 주변에는 노포라 할 수 있는 맛집 몇 군데가 있다. 일명 한추라 불리우는 ‘한잔의 추억’은 매콤한 튀김 닭이 일품이라 평일에도 줄을 섰던 곳이고 바로 그 옆의 중국집 ‘대가방’은 서울 3대 탕수육으로 유명하다(그런데 도대체 3대 이런 것은 다 어디서 왔나?).

 무엇보다도 로바다야끼 길손은 진정한 노포다. ‘화로구이’란 뜻의 로바다야끼는 ‘선술집’이란 의미의 아자카야보다 먼저 유행했던 일본식 선술집이다. 80년대 후반에 한국에 상륙하고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한창 잘 나가던 시기에 오렌지족은 물론 트렌드세터들이 이런 류의 술집에 몰렸었다.

 재미있었던 사실은 당시 이 곳 길손과 인근의 방추와 함께 갤러리아 건너편의 가인, 매화, 장군, 아랑 등의 로바다야끼에는 메뉴판에 가격을 써놓지 않았다.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허세를 부리거나 진짜 돈이 남아도는 젊은 청춘을 위한 것이었을까?

 하지만 테이블 주문의 절반은 이미 저렴하다고 가격이 알려진 레몬소주, 삼치구이, 새우튀김, 알탕 등이었으니 상위 0.1프로만 가는 곳이란 것은 실제로 억측이었다.

 과거 90년대에 압구정동 로데오거리가 강남 유흥가의 중심지였다면 가로수길은 2010년 전후 강남 도시중산층 계급의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 펼쳐졌던 곳이다. 테라스 카페, 브런치 레스토랑, 부띠끄샵 이렇게 3요소가 제대로 갖춰진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압구정 로데오가 다시 뜬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뇌피셜을 동원시킨다면) 대체는 될지언정 과거 가로수길이 등장했을 때의 아성에는 역부족이다. 왜냐하면 2020년 전후의 MZ세대의 소비욕구는 (럭셔리 분야만 제외하고) 이젠 더 이상 ’10년 전 강남스타일’에서는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듯 하지만 결국 경제자본의 위계로 서열화된 소비와 씬SCENE만으로는 생산과 커뮤니티의 스토리가 결부된 개념적 소비문화를 쉽게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새로운 소비문화는 로컬의 특성과 잘 교합된 라이프스타일에 기반을 두면서 새롭고 창의적인 소비의 변주로 펼쳐지고 있다. 서울만 보자면 대표적으로 강북의 성수동, 연희동, 연남동, 한남동, 을지로, 용산이 그렇다.

PS 1 강남 특히 압구정 일대는 8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퇴폐와 사치를 동반하는) 물질주의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욕망의 거리란 오명을 안았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현재의 다양하고 개성이 만연한 대중소비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갖추는데 일익을 담당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PS 2 퀴즈 하나 풀자. 가수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그리고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이 노래 제목을 남서울 영동으로 착각하는 이유는 순전히 <여기는 남서울 영도오옹, 사랑의 거어리~>가사 때문임)’ 그리고 하나 더 얹혀 혜은이의 ‘제 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까지 이 노래들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문제가 아니다) 과거 영동(영등포의 동쪽)이라 불렀던 강남 특히 여기 신사역 주변을 말한다. (드디어 문제 나갑니다) 그렇다면 왜 이 곳을 지목했을까?


이 곳이 과거 카바레, 스탠드 바 같은 성인식 나이트 클럽의 성지였기 때문이란다.
사연은 이렇다. 강남 개발이 한창 시작되던 70년대말과 80년대 초중반 정도에는 황무지처럼 삭막한 이 곳에서 상업이나 장사를 하려던 이들이 적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각종 특혜를 주면서 이른바 환락가를 조성한 것이다(소위 강남 8학군 고교 중 경기, 서울, 휘문 등의 강북 명문고가 거의 반강제로 강남으로 옮겨진 맥락과 비슷하다).

PS 3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건물은 1972년도에 서대문 미근동에 완공된 서소문 아파트(드라마 ‘나의 아저씨’ 배경으로 나왔던)라고 한다.

하지만 1967년부터 72년까지 세운, 현대, 청계, 대림, 삼풍, 풍전, 신성, 진양상가가 차례로 건립되었던 초대형 주상복합상가군인 세운상가가 그 시작부터 따지자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아파트라 할 수 있다.

Credit 에디터 Jisoo Kim
            리빙문화 칼럼리스트. 가구와 인테리어를 담은 리빙문화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소개한 <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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