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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칼럼] ‘헤어질 결심’을 진정으로 즐겼나

출처: 네이버 영화

‘헤어질 결심’을 진정으로 즐겼나?

 영화나 드라마의 재미와 감동은 짜장과 짬뽕의 선택 같은, 지극히 주관적인 거다.
 그래서 객관적 평가는 다수의 고개가 끄덕거릴 때에만 가능하다.
 바꿔 말해서 대중 다수의 눈높이에서 가늠이 안되면 바로 전문가 또는 전문 집단의 가치와 잣대가 필요한 ‘문화 가치재’로 변신한다(아니 태생이 그런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무조를 이루는 12음계법’을 이해해야 즐길 수 있는 쉔베르크의 무조음악, ‘감각의 실체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심상)에 존재함’을 인식해야 감상이 쉬운 인상주의, 미술 전반의 ‘구상과 비구상의 차이’를 알아야 감탄을 내뱉을 수 있는 마르셸 뒤샹의 작품 ‘샘’ 등이 그렇다.

 이는 비단 예술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먹고 마시고 맡는 식음료 Food & Beverage의 라이프 스타일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암모니아 냄새를 뿜어내는, 이탄 peat의 풍미에 익숙해져야 즐길 수 있는 스코틀랜드 아일라섬 지역의 싱글몰트 위스키, 타닌과 바디감의 절묘한 발란스에 익숙해져야 비로소 쟁취할 수 있는 스틸 와인의 맛, 신맛을 중심으로 쓴맛, 단맛, 짠맛과의 발란스를 알아야 만끽할 수 있는 커피의 풍미, 슴슴함이 맹맹함과 다르다는 것을 느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평냉의 미각 등 말이다.

 그렇다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제대로 감상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전 학습’이 필요하나?


 (다행히도) 필요한 것이 없다고 본다.
 흔히 누벨바그 류의 예술 영화로 언급되는 레오까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 ‘나쁜 피’처럼 지루하거나 난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감독 스스로 이 영화는 대중오락장르라고 일컬었다. 나는 감각적으로 미쟝센을 잘 쓴, 탁월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인물 간의 심리를 연결하는 각종 시각적 장치들이 낯설으면서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으면 불편한데 말이다.


 특히 서래(탕웨이 역)가 처음 뱉은 중국어 소리와, 번역기가 변환한 어색한 한국말(심지어 남성)이 나올 때 장면은 압권이다. 그리고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안개’와 ‘붕괴’란 단어는 쉽게 잊혀지질 않을 것 같다. 정말 유쾌하고 진지하게 감상했는지라 2시간이 넘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박찬욱’, ‘깐느’ 같은 권력화된 수식어를 모르고 이 영화를 봤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별 차이가 없었을 거라 본다.
 

 다만 칸 영화제가 주목하고 알아본 영화 중 이렇게 별스럽고 재치가 넘치는 영화가 과연 ‘헤어질 결심’ 하나였을까(박찬욱은 하나지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군계일학 혹은 세기의 영화 같은 찬사가 붙을만한 명작은 아니라고 본다.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리고 영화 좀 본다는 덕후들의 후한 평가와 그것에 동조하는 다수 댓글러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흥행( 이제 100만이 넘었다고)이 부진한 이유도 궁금하다. 혹시 200만을 찍어줄 것 같은 다수 대중들의 속내가 “에이 잼 없다는데 가지 말자”는 아닐련지.

 서두에서 말한 ‘문화 가치재’는 당연히 대중적이지 않다. 일정 수준의 학습과 인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수의 문화, 예술 엘리트들과 권력자들의 안목과 취향이 위대하고 뛰어나다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레오 까락스의 영화가 지루하면, 강배전한 예멘 커피가 다소 쓰다면, 평냉이 심심하면, 바스키야의 그래피티가 형편없어 보이면 ‘그것이 무척 재미없었고 후졌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사전학습’의 유무는 다른 문제다.

 만약 재미도 맛도 없었음에도 좋았다고 말했다면 “나도 너희와 같은 레벨인 것 인정해줄래?”를 달리 말한 것이다. 고급스런 문화 자본과 그걸 영위하는 계급에의 일환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는 장인의 노고와 예술혼은 물론 소재의 희소성, 작품의 가치보다 ‘누가 입고 차고 신고 앉았기 때문에 ‘핫’한’ 명품을 구매하는 속물적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나는요… 지금 완전히 붕괴 됐어요. **에 미쳐서… (증거가 담긴 ***을 건네며) 깊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못 찾게.”
 그 허위의 욕망들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 영화의 대사처럼 말이다.

 PS 아주 오래 전 국내에서 상영한 ‘퐁네프의 연인들’은 예술영화임에도 이례적으로 수 십만명을 동원한 흥행성공작이었다. 감독의 예술적 시선과 난해한 영화 문법이 쉽게 통용된 것이 아니라 재즈를 듣기 시작한, GDP 1만불 국가의 문화 속물적 성향이 빚어낸 아이러니란 평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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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Jisoo Kim
            리빙문화 칼럼리스트. 가구와 인테리어를 담은 리빙문화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소개한 <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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