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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칼럼) 로맹 가리

 낡았지만 늘 폼이 나는 영국제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었고, 영화 속 인물처럼 포마드로 머리를 단장했던, 클래시classy한 사내.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 툭튀어나온 광대뼈, 선이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푸른 빛을 띤 눈을 가진, 매력적인 외모의 남자.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프랑스의 콩쿠르 Le prix Goncourt를 ‘하늘의 뿌리’로 수상했고, 자신의 작품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직접 감독이 되어 영화로 만든, 문학과 예술의 지성을 갖춘 남성.

 그랬던 그가 1980년 66세가 되던 해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리고 자살한 사내의 주검 발 아래에는 다음의 내용이 적힌 유서가 놓여 있었다.

J. 데이
진 시버그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상심한 열성 팬들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길.
분명 신경쇠약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그 병이 내가 성인이 된 후로 줄곧 지속되어왔고, 그것을 앓으면서도 내가 작품 활동을 잘해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해답은 아마 내 자전적 작품의 제목인 ‘밤은 고요하리라’와 내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구절인 ‘더 잘 말할 수 없기 때문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
– 로맹 가리

 그의 이름은 로맹 가리였다. 그런데 어릴 적 이름은 로맹 카체브였고 그의 사후 또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가 죽기 전 5년 전인 1975년에 작품 ‘자기 앞의 생’으로 프랑스 콩쿠르상을 수상했던 에밀 아자르가 사실은 그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이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세계적 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것이다(콩쿠르상은 해가 달라도 동일 인물에게 두 번 줄 수 없는 규정이 있다고 함?).

 어떻게 알았을까? 자살 전 그의 변호사에게 보냈던 서류에 이 내용이 담아 있었다. 그리고 발표할 시점까지 꼼꼼하게 적시했다고 한다.

 끝의 문장이 이렇다.

 “한바탕 잘 놀았소. 고마웠소. 그럼 안녕히”.

 유서에 적혔던 마지막 문장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을 완전히 표현했다.’가 독백과 같다면 이는 절친들과 팬에게 날리는, 쿨한 손짓과 휘파람 같다.


 지금 내 앞에는 전기 작가 도미니크 보나의 ‘로맹 가리’가 놓여있다.

 
 뼈대를 대충 살폈으니 이제 그의 살과 오장육부를 헤쳐 나가면서 혈관을 타고 뇌에 도달할 수 있겠다. 사백 삼십 이쪽을 읽는 유영游泳을 통해서 말이다.


 그래야만 그가 쓴 소설들, 그것들이 원작이 된 영화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테니까.

PS 1 사진에 같이 놓인 소설 ‘에브리맨’의 필립 로스 역시 다음 탐구 대상이다.

PS 2 콩쿠르 수상작 ‘자기 앞의 생’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넷플릭스에서 얼른 보시길) 주연이 소피아 로렌이다. 그리고 그의 원작이자 그와 모친의 전기와도 같은 영화 ‘새벽의 약속’에는 제인버킨과 갱스부르의 딸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로맹 카체프의 엄마 니나 카체프 역을 열연했다(아직 못봤다^^).

Credit 에디터 Jisoo Kim
            리빙문화 칼럼리스트. 가구와 인테리어를 담은 리빙문화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소개한 <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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