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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14 "이화"(2부)

웃으면서 돌아와, 내게 2014, acrylic on canvas, 100 x 80.5cm

4.

 그날이 무슨 날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에게는 만 원이라는 큰 돈이 들려 있었다. 그 돈이 무슨 용도로 내 수중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였는데,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그 돈을 들고 내가 어디로 갈 거라는 것쯤은 예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땡! 나는 이화로 가지 않았다. 대신 새로 생긴 솔로몬이라는 오락실로 향했는데, 아 왜, 새로운 백화점이 오픈하면 괜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나 역시 새로 생긴 오락실이 궁금했다. 그 가게 입장에서 보자면 오픈빨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거금은 어린이의 배포를 그 돈 만큼이나 커다랗게 만들어서, 나는 만원을 모두 50원짜리로 바꾸고 오락실에 있던 생면부지의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유일한 설명은 내가 10세(발음에 유의하기 바란다)의 박애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 10세의 어린이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이가 아닌가. 만원으로 저녁까지 카니발과 같은 축제를 벌인 10세의 어린이는 가진 돈을 탕진하고서야 서서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준 돈으로 아이들은 게임에 열중해 있었으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문득,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살길을 도모해야 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공포영화에 나오는, 목이 잘려 죽고 전기톱에 썰려 죽고 칼에 찔려 죽고 끔찍하게 맞아 죽는, 성적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무리들과 따로 떨어져 있던 바보 같은 연인들이 할 법한 행동인 것이다. 그 순간 10세의 박애주의자는 범상치 않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등잔 밑이 어두운 법. 당시 우리집에는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중간에 옥상으로 이어지는 2미터가 조금 안되는 브릿지같은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에 몸을 숨기기로 했다. 그곳은 집 마당과 밖을 모두 볼 수 있어 살인마의 동태를 살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운이 따라준다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사히 브릿지에 몸을 숨기고 동태를 살피고 있는데 현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살인마와 그의 딸로 추정되는 어린이가 튀어나왔다. 나는 숨을 죽이며 몸을 사렸고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 “이시키 어디를 갔는데 안들어 오는거야, 저녁도 안 먹고, 어 휴. 아주 들어오기만 해봐라. 가만두나. 어디를 간거야!”

– “엄마 걔 분명히 오락실 갔을 거야, 이화오락실 가서 잡아오자, 솔로문이라는 오락실이 새로 생겼데. 거기도 들러보자”.

 살인마보다 그의 딸이 더 미웠다. 솔로몬을 어떻게 알았지! 정문을 열고 그 둘은 나를 잡으러 밖으로 나갔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계속 몸을 숙이고 있던 탓에 몸이 점점 굳어왔고, 너무 졸린 나머지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갈 때쯤, 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엄마! 원보 여기있어!”

 ‘아, 누나 너무 싫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집안으로 끌려들어갔다. 나는 숲속의 오두막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처음으로 맞아죽는 연인들의 신세가 된 것이다. ‘그래 우리도 죽을 거야, 하지만 오늘은 아니지’라는 대사는 살인마 앞에 놓인 사람에게는 개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죽는 날은 오늘이 분명했다.

5.

 나는 처형을 기다리는 공포영화의 주인공처럼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람보는 내 앞에서 화가 난 얼굴로 서있었고, 살인마의 딸로 추정되는 약 12세정도의 어린이에게 너는 마당에 가서 호스 가지고와!라고 말했다. 그 딸은 망설이지도 않고 람보의 말에 따라 수도꼭지 호스를 들고 왔다. ‘그래, 나는 처음부터 저 딸이 마음에 안들었어. 내가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너부터 손봐주마’하고 생각했다.

 살인마는 내 옆에 앉아 나의 알리바이와 만원의 행방을 연신 물으며 다그쳤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는데, 그 얘기가 살인마의 화를 더 돋구었는지, 엄마는 손으로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왜 다들 등을 때리는지 모르겠지만 아프지 않았다. 나는 별 불만없이 주어진 운명을 감내하고 있었는데, 그런 구도자와 같은 나의 몰골에 이여사는 더 화가 났는지 급기야 람보가 애지중지하는 람보칼을 서랍에서 꺼내는 것이 아닌가. 등은 톱이요, 배는 칼인 서슬퍼런 람보칼을 보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세 어린이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래, 오늘 후회 없이 오락을 했다. 이만하면 어린이로서는 해볼 거 다해본 괜찮은 삶이 아니었는가, 이미 볼 장 다 본 삶, 미련 없다. 생각하는데, 살인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이새끼야, 만원을 다 오락에 썼단 말이야? 아이고 이게 뭐가 될 라고. 아이고. 이놈아, 오늘 너죽고 나죽자!”

 그 모습을 본 람보는 ‘어, 어, 그 칼은 그런 용도가 아닌데..’하는 표정과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이랑 결혼을 한거지, 라는 당혹스러움이 교차하는 얼굴을 하고는 오른손에 호스를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나다. 람보칼이든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처형식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살인마는 람보칼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어서 내 상의 하의 내복을 찢었고, 허옇게 드러난 여린 피부를 간신히 가려주고 있는 난닝구마저 처참하게 찢어버렸다. 생각지 못한 살인마의 공격을 받은 10세 박애주의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죽기로 각오한 거였지 이런 식의 수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역시 프로는 다르다. 살인마는 내 옷을 찢으면 말했다.

– ‘빨리 아빠에게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 이눔아’

 그 말을 들은 람보는 단지 ‘어,어’하고만 있었다.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옷이 찢어진 몰골의 내가 도무지 웃음을 참기 힘들만큼 비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을 본 엄마는 “뭐야, 웃음이 나오니”하며 더욱 난닝구를 찢었고 그럴수록 나는 더욱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웃음의 댓가는 혹독한 것 있었다, 모든 아이들이 제발 이것만큼은 피하고 싶어했던 체벌인, 무려 빤스만 입고 대문 밖에 서 있기였다. 지금 기억해보면 내가 빤스만 입고 대문 앞에 서 있던 모습이 1인칭 시점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점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기억을 하고 있다. 아마도 나는 너무나 쪽이 팔린 나머지 나 자신을 그 상황과 괴리시켜서 왜곡된 기억을 스스로에게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한참 후에 누나가 나를 불러들인 것 같다. 영화는 끝났지만 10세의 박애주의자는 맞아 죽지 않고 운 좋게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겠지. 아아, 혹독한 시절이었어.

 (엄마는 내 내복과 난닝구를 찢은 이유를 얘기해 주었는데, 오래 입고 낡아서 새로 사려고 했었단다. 이여사의 인권을 참작해 적어 둔다)

6.

 “삼촌, 저는 오늘 게임만 하다가 과제는 못 하고 집에 갈 줄 알았어요”

 “그래? 삼촌은 네가 과제 할거라는 거, 알고 있었어”

 “왜요?”

 “널 믿으니까”

 이 말을 들은 조카는 슬며시 웃었고, 그 웃음을 본 내 마음은 따뜻해졌다. 종종 우리집에 놀러 온 조카는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마음껏 했는데, 누나는 내게 항상 당부했다. 공부하라고 해, 잠은 좀 제발 일찍 재우고. 물론 나도 처음에는 많이 혼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오락실에 살던 내 유년기를 떠올렸고 잔소리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나 역시 엄마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들을 들었으나 무엇보다 가장 바랐던 것은 나에 대한 엄마의 믿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믿음을 준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을 나도 잘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믿어주기를 바랐다. 내 조카들도 나와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라도 조카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물론 엄마나 아빠도 그 역할이 처음이기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본인들도 잘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면 람보칼을 꺼내든 엄마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종종 이런 얘길하면 엄마는 결코 기억이 안난다고 잡아떼고 있다)

조카들로부터 ‘MC독버섯’이란 별칭을 얻은 누나가, 말을 잘 듣지 않는 연년생 아들들과 늦둥이 딸아이를 잔소리없이 무조건적인 믿음만으로 키우는 게 어려운 것과 같이, 태어난 지 14년 밖에 안된 아이 역시 하루종일 공부만 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게임이라는 도파민 자극제가 옆에 있는 것은 어린이들로서는 참기 힘든 사탕과 같다. 게임은 어른들이 만든 것이지 어린이들이 만들어 달라고 조른 것은 아니다. 세상은 ‘어린이’를 ‘겪으며 성장한’ 어른들이 창조한 세계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들은 꽤 의미심장 하다.

 너무 자주 사탕에 손을 댔던 나였지만 그렇기에 조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게임을 하고 있는 조카들을 바라볼 때면 자기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때면 조카바보 삼촌모드로 슬쩍 옆에 가서 물어본다.

 “성현아, 이현아 이거는 무슨 게임이야?”

 “아, 삼촌! 게임하는데 말 시키지마! 삼촌 때문에 죽었잖아, 아..진짜”

 그러하다.

7.

 살인마에게 맞아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그 날로부터 며칠 후 나는 옥상에 올랐다. 옥상 난간을 잡고 밑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정확히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엄마 몰래 오락실을 갈 수 있지 않을까”

– 끝

Credit 글작가, 화가 윤원보 | 월간 윤원보
Web Editor PICTO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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