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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15 "나와 나와의 틈"(1부)

Prozac : monster, 2021, acrylic on canvas, 145.5 x 112.1cm

“나와 나와의 틈”

1. 틈

 

아픈 것은 나와 나 사이의 틈에서 오는 것이다. 사실을 마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2. 새

새의 뼛속은 비어있어서 자유롭게 날기에 적합한 구조로 되어 있다. 새의 깃털을 이루는 한 가지 중 뼈대라 할 수 있는 깃대 역시 속이 비어있고, 깃털은 방수가 되어 중력의 영구적인 일관성과 날씨의 변덕에도 자유롭게 공간을 질주할 수가 있다. 그런 자유로운 낙하를 시샘하는 결과로 인간은 커다란 비행기를 만들었고, 새들의 영역을 넘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은 새들의 유려한 비행의 곡선을 완벽하게 모방하기에는 그 자신들의 재능이 모자람을 절실히 느꼈다. 무거운 외피를 두른 커다랗고 무거운 새들의 속도는 그 어떤 새들보다도 빨랐으나, 낙하는 자유롭지 못했다. 하늘을 나는 일은 자신이 원할 때, 땅의 나뭇가지에 잠자러 내려오거나 먹이를 찾을 때 혹은 짝짓기를 하기 위해 언제든지 도착할 수 있는 부담 없는 일이어야 했다.

 

그래서 인간은 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태곳적 어느 동굴, – 지금은 유명한 곳이지만 – 그곳에 그려진 들소, 사슴, 고래 그리고 새를 그리던 조상들의 꿈을 꾸며 새들의 자유로운 날갯짓을 느껴보곤 했던 것이다. 꿈은 새의 깃털과 마찬가지로 중력의 영향을 벗어나 어디로든지 날아갈 수 있는 환상을 눈앞에 늘어놓았고, 인간은 자신의 어깨쭉지에 날개가 없다는 것을 망각한 채 다시 한 번 날고자 하는 이상을 가지게 되었다.

 

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는 그 사실은 인간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하늘을 날게 되리라는 꿈은 땅에 발을 내딛고 살았던 우리에게, 존재의 근원을 묻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있으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희망이 아니라 차라리 고통임을 인간은 알지 못했고, 어리석은 기도의 댓가는 우뢰와 천둥이 주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영원히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로 스스로에게 유폐되어가는 것은, 빗소리와 야생동물들의 울음소리, 천둥소리가 들리는 지하의 동굴 안에서 숨죽여 귀 기울이며 세상의 비밀에 대해서 끝도 없는 두려움을 간직한 채 움츠러 있는 조상과 지금 우리의 모습이었다.

 

땅은 인간의 꿈이 될 수 없었고 하늘을 동경한 인간은 지금도 땅에 발을 딛고서, 삐익 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을 바라보고 있다.

오래전 어렴풋이 꾸었던 새들의 모습을 여전히 궁금해 하면서.

Credit 글작가, 화가 윤원보 | 월간 윤원보
Web Editor PICTO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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