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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칼럼] 압구정 회고

 80년대말에서 90년대 후반까지 트렌디 시티 라이프의 ‘유흥’의 중심에 있던 곳이 압구정동이었다.
 환락 지대라 부르기에는 너무 세련되었고 고상한 문화거리로 인정하기에는 너무 물질적이었다.
 
 보통 이 구역에 도산공원 일대를 포함시켜 말하는데,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2005년 이후 새로운 강자 가로수길에 밀리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선 압구정동에서 유일하게 트렌디&럭셔리 감성을 잃지 않았던 지대였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압구정동이 잘 나가던 시절의 중심지는 갤러리아(과거 한양쇼핑센터)바로 건너편의 로데오 거리와 청담 고센 카페 올라가는 언덕 건너편의 압구정 상가 일대였다.
 
 아직까지도 존재하는(사실 IMF이후 생겨난) 현재 밀크포차 또는 달빛술담이 위치한 곳이 아마도 과거 압구정동을 구분짓는 물리, 심리적 경계선이다.
 
 첨언하자면, 도산공원 일대의 카페, 레스토랑, 웨딩숍, 명품 갤러리 등은 새천년 이후의 부산물이다. 구지역이 죽고 가로수길이 날개를 달 때 같이 웅비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압구정 일대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듯 뜨고 있다는 뉴스는 침소봉대되었거나 그 지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된다.
 
 과거 압구정 몰락의 궁극적 원인으로는 높아가는 임대료 대비 새로운 트렌드를 리드하는 가게와 인프라가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 본다.
 
 예를 들어, 가로수길에는 있는 것이 없었고, 없는 것이 있었다. 압구정에 없는 것은 테라스 카페였고 (새로) 생긴 것은 일방도로였다.
 
 GDP 2만불 시대의 시민들은 하늘 한번 편히 올려다 볼 수 있는 테라스존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희석시킨 아메리카노를 여유롭게 마시길 원했는데, 압구정은 노천(露天 이슬을 맞을 수 있는 하늘 )을 제공하지 않았다. 90년대 히트 공식이 이젠 해법이 될 수 없음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 ‘태양은 없다 (1999)’에서 이정재와 정우성이 걷고 뛰던 그 메인도로가 멋대가리 하나 없는 바닥 장식으로 점철된, 일방통행길이 되다보니 도로변 미관이 더욱 낙후되어갔다. 새로 생긴 어떤 샵들도 미적으로 매칭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아…관제 감성이란…
 
 교통개선은 되었을 지언정 유치찬란한 바닥 덕택에 고객들은 발길을 돌렸다.
 
 여하튼 압구정은 내게 2010년 이후 아주 가끔씩 들르는 지역이 되었다.
 
 도산공원 일대는 여전히 성업중이며 특히 런던 베이글 가게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안국동 본점과 비슷).
 
 반면 구로데오 지역은 조금 활기를 찾기 시작했으나 일방도로는 여전하고 주변 미관도 마찬가지다.
 
 군데군데 멋드러진 공간이 서너 가지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물론 10년 전보다는 나아지긴 했으나 원래의 왕좌를 찾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PS 1 8090시대의 압구정이 물질만능주의 토대에서 융성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YS 정부 들어서 몇 년간 시내 유흥업소 영업시간 제한을 두었을까(밤 12시~새벽 5시). 하지만 지금의 탈물질주의 지향 로컬들이 아예 씨앗 조차 없던 시절이라 비록 물질주의적 성향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압구정, 청담 그리고 방배동 일대에서 꽃피웠던 다양한 상업 공간과 문화, 예술인들의 모임이 현재의 세련되고 개성있는 문화예술상업공간의 융성에 일익을 담당했음 역시 인정해줘야한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가 결핍된 것 역시 압구정에 대한 부정적 시선 때문이 아닐까? 90년대말 문화이론에 경도되었던 네오맑스주의자 역시 이를 다루지 않았다. 현재 한류가 더 커진다면 누군가 이를 다루어야 하는데.
 
PS 2 그래도 여길 오면 꼬박 들르는 곳이 있다. 우동.모밀.돈까스 전문점 ‘하루’. 냉모밀과 유부초밥을 늘 시켜 먹는다.
부대찌게와 아구찜 가게는 대체로 맛있다. 대신 군계일학의 맛을 가지기가 힘들다.
반면 모밀 냉면은 적절한 찰기, 탱탱함 그리고 부드러움을 갖춰야 하기에 왠만한 집들은 대충의 맛에 멈춘다. 그런데 이 집은 늘 혓바닥 미소를 펼치게 하는 면발을 가져다준다. 무슨 재주를 부린걸까?

Credit 에디터 Jisoo Kim
            리빙문화 칼럼리스트. 가구와 인테리어를 담은 리빙문화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소개한 <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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