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Review)온 세상이 하얗게

Groo Review

그루 리뷰는 신간이나 전시 등 창작자들의 작품 소식을 전합니다.

이석구 작가, 온 세상이 하얗게 

“그럼에도 겨울 옷을 건네는 누군가 덕분에, 조금 더 다정해지는 세계”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 후 직장에서 이러닝 콘텐츠를 제작하던 중, 그림을 그리고 싶어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책, 잡지 등의 출판물 일러스트 작업을 해오다가 2015년, 그림책 <두근두근>을 출간하며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지 10년 정도 지나고 나서였다. 

10년이라는 시간을 깨고 나온 이석구 작가는 이후로 그림책 <숨박꼭질(2017)>, <아기바람(2017)>, <온 세상이 하얗게(2020)>을 쓰고 그리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오랜 기간 인스타에서 가족과의 단란하고 다정한 일상을 그린 만화를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전시회
2015 에버랜드 장미원 <Love on Grafolio>
2016 서울미술관 그룹전 <연애의 온도>
2017 창원문화재단 <우리 동네 놀이터>
2017 암웨이 미술관 <미술관에 간 그림책>
2018 북촌전시실 <이석구그림책 원화전>

mail_gooroovoo@naver.com

 

얼마 전, 정말로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 누구보다 가장 즐거워 한 건 아이들이었죠. 코로나로 인해 밖에서 뛰놀 일이 부쩍 준 아이들이 그날만큼은 부모님과 또 친구들과 함께 맘껏 눈을 만끽했어요. 오랜만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맑고 경쾌한 웃음소리가 오랜 격리 상황으로 삭막해진 거리에 무지개색을 덧입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눈길 출퇴근 걱정으로 찌푸려진 어른들의 미간도 그 웃음소리에 부드럽게 풀어졌죠. 이번 리뷰에서는 기적과 위로처럼 펑펑 내리는 눈 사이로 퍼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같이 우리의 딱딱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림책을 소개하고자 해요. 바로 이석구 작가님의 <온 세상이 하얗게>입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는 이석구 작가님이 <두근두근>, <숨바꼭질>, <아기바람>에 이어 글과 그림을 도맡으신 네 번째 그림책입니다. 책의 표지엔 굴뚝과 나무가 하얀 눈을 이불처럼 꼭 덮고 있는데요. 책을 펼치면 눈이 뒤덮기 이전의, 초록으로 무성한 따뜻한 마을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과는 외따로 떨어진 두 집이 저기 보입니다. 그 집에 사는 도나윤씨와 할머니가 바로 <온 세상이 하얗게>의 주인공들입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오래 비워져 있던 도나윤씨의 옆집으로 이사를 옵니다. 추운 곳에서 온 할머니는 따뜻한 이곳 마을을 마음에 들어 하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를 탐탁지 않아 합니다. 할머니가 ‘빈둥대기만 하는’ 도나윤씨를 데리고 마을을 쏘다니며 여기저기에 ‘잔소리를 늘어놓기’ 때문이에요. 할머니와 도나윤씨는 어딜 가나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사시사철 따뜻하기만 하던 마을을 엄청난 눈이 새하얗게 뒤덮습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아침, 할머니는 마을이 늘 따뜻했기 때문에 겨울옷이 없을 마을 사람들을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나윤씨와 함께 두터운 겨울옷을 한 보따리 챙겨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죠.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도나윤씨와 할머니를 달가워하지 않지만 할머니는 아랑곳 않고 우선 아이들에게 겨울옷을 나누어 줍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차례로 우중충한 회색 옷 대신 할머니의 알록달록한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하얀 눈 위에서 처음으로 모두 함께 어울리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신나게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코코아를 나눠 마시죠. 그리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따스하게 데우는 온기를 느낍니다.

그 온기를 독자도 느낄 수 있게끔 마지막 두 장면은 따뜻한 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야기는 다음의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눈은 곧 녹아서 없어지겠지요.

하지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던 오늘 하루는 사람들 마음에 영원히 남을 거예요

 눈이 녹는 게 아쉽지 않을 만큼, 참 따뜻한 마지막이죠? 마음을 닫은 채 편견과 판단으로 세상을 대하면 타인과 진심을 맞댈 수 없어요. 결국 춥고 외롭게 될 뿐이죠. 여름옷을 입고 눈 한복판에 서있는 마을 사람들처럼요.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우리에게 겨울옷을 건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세계는 어제보다 오늘 더 상냥하고 다정해질 수 있는 거겠죠? 타인을 더욱 날카롭게 경계하기 쉬운 요즘 같은 날들에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온 세상이 하얗게>를 다 읽은 지금, 저는 다른 이에게 먼저 가볍게 인사하고 부드럽게 손 내밀 준비가 된 것 같아요.

Credit  에디터 Soo Choi

What do you think?

71 points
Upvote Downvote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Loading…

0

(인터뷰)일러스트레이터로 밥벌이 하려면 ‘선택’을 해야 한다

“60세까지 예술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