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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주차장 거리가 수상했다

홍대앞 주차장 거리는 예전부터 수상했다. 지금이야 그 주변 건물이 죄다 상업시설이니 대형 주차장이 있을법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1,2층짜리 단독주택이 즐비하던 곳이다. 당시 서울 어느 주택가에 이처럼 커다란 주차장이 조성된 곳은 없었다.

서교동 일대가 부촌이긴 하였어도 시에서 도심 주택가에 굳이 주차장을 만들어줄 이유가 있었을까?

그리고 주차장 길을 따라 홍대역 방면으로 따라가다 보면 약간의 내리막길이 시작되고(그 우측으로 빠지면 자그마한 공원(프리마켓을 주로 하는)이 있음) 그 길 중심에 이상야릇한 상점들이 포진되어 있다.

오래된 노포가 있었을 것 같은, 아슬아슬한 구조를 가진 2,3층 구조의 가건물들이 기차처럼 쭉 이어졌고 그 1층에는 구제 옷이나 값싼 액세서리를 파는 숍들로 이루어져있다.

보통 상가 건물은 길을 가운데 두고 양 측에 조성되는 것이 상식인데 여기는 상가 건물 사이의 큰 골목길 중간에 센터라인으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생각할수록 희한한, 주차장과 센터라인의 건물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1980년에 폐선 된 철도에 그 답이 있다. 주차장 거리와 센터라인에 조성된 낡은 건물이 바로 철로가 지나갔던 자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허름한 건물 일대를 서교 365라 부른다.

상수역 그러니까 한강과 맞닿은 곳에 위치한 당인리 발전소. 과거에는 무연탄을 동력 삼았던 화력발전소다.

무연탄 공급을 위해서 현재 경의선 철길 공원의 동교동 방면에서 시작하여 (현재) 주차장 거리를 관통하고 상수동 골목길로 이어지다가 발전소 내부까지 연결된, 약 1.6km의 철로가 존재했다. 당인리선이라 불렀다.

첨언하자면 현재 각종 버스킹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원 터(어울 마당로)는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낡은 상가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던 곳이다.

주로 홍익촌 같은 주점과 분식집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여기 역시 동교동 방면에서 시작하는 당인리선의 철로가 있었던 구간이다.

결국 90년대 초반 홍대를 드나들던 부류는 주차장 거리의 돈 많은 부르주아와 힙스터 그리고 홍대역 주변 허름한 먹자촌을 찾는 범용 소비자로 나누어졌었다.

(후술하겠지만) 따라서 홍대 기반의 보헤미안 예술가들은 오히려 이 양분화된 지역보다 홍대 정문을 축으로 좌우로 분산된 화랑, 문예 센터, 소극장 및 이들 지역의 빈틈 또는 조금 외딴곳의 지하에 그들의 아지트를 형성했다.

그것들이 상업적 목적과 예술, 문화에 결핍된 취향 소비자들과 조우하여 후에 발전소, 블루 데블, 명월관, 황금투구, 드럭 등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인리 발전소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인리’라는 지명은 ‘당나라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을 의미하는데 청나라 시대조차도 중국인들은 죄다 당나라 사람으로 인식하였던 풍토가 남긴 지명이다.

그런데 1980년 에너지 공급이 석유(현재 LNG)로 바뀌면서 이 라인은 폐선 되었고 거기에 불법 건축물과 주차장이 조성된 것이라 전해진다.

결국 폐선 이후 홍대를 드나들던 예술인들과 재학생들에게는 은근 숨겨졌던 역사인 셈이다.

Credit 에디터 Jis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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