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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2 ‘잘 지내고 있어’ (2부)

i want it alllll, oil on canvas, 91 x 117cm, 2020

어쨌든 크리스마스는 기적이 일어나는 날이니까.

3. 크리스마스

내겐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셨었다. 과거형을 쓴 이유는 작년 추석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사서를 공부할 당시 같은 반이었고, 그중에서도 나만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며 붙임성 좋게 행동해서인지, 나를 이뻐하셨다. 수업을 같이 듣고 댁에 가서 과제도 도와드렸던 기억이 아득하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웃음은, 참 종교인이란 어떤 것인지의 전형이셨다. 나와 종교가 달랐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이 얘기를 나눴고, 수업이 끝나고 늦은 밤에도 한사코 사양하는 나를 집까지 당신의 차로 데려다주시기도 하였는데, 당시 이야기를 나누며 옆에서 바라보던 아버님의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아버님은 회사를 퇴직하시고 복지사 자격증 공부를 하셨으며 사서 공부를 하신 것인데 이유를 물어보니, 훗날 당신께서 직접 만드신 교회에서 사람들을 돕고 한켠에는 도서관을 지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진실로 아버님과 어머님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두 분을 나와 지척에 있는, 내 인생의 모델로 생각했다.

아버님의 투병소식을 전해듣고, 지인들과 찾아뵈었을 당시 아버님은 언제나 그러셨듯이 내가 존경하는 미소를 담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에 반해 수척해지신 어머님의 얼굴이었다. 아버님의 식이요법에 신경쓰시느라 몸이 상하신 것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어머님의 모습은 준수하셨고 인자하셨다. 마음이 놓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멍하고 헷갈렸다. 그렇게 인자하신 분을 왜 그렇게 빨리 데려가신 걸까. 장례식장 갈 준비를 마치고 차에 앉아 출발하려는데, 부족했다. 어머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냥 갈 수는 없었다. 메모지를 찢어 글을 썼다. 위로의 글을 썼으나, 몇 글자로 남은 사람에게 위로가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 쓴 것일지도 몰랐다. 가기 전 나를 먼저 위로해야 했었던 걸까. 부조금 봉투에 쪽지를 넣으며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것을 느끼고, 이내 출발할 수 있었다.

어머님은 수척하셨으나 미소로 나를 반겨주셨다. 자주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하다고, 나에게 면죄부를 주는 듯한 얘길 내뱉으며 어머님을 뵈었다. 할 말을 찾았으나 내내 실패한 나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머님의 손은 따뜻했다.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어머님은 나를 위로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님의 마음은 끝없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을 걷고 있으셨을 거라 짐작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미소 짓는 어머님 눈동자에서 언뜻 보았던 것도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내 짐작이 틀렸기를 바란다.

죽음은, 바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대면케 했다. 바빠서 보지 못했던 친구와 식사를 대충했다. 어머님께는 종종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였을까.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장례식장을 나와 친구랑 출출한 배를 달래자고 빵집을 찾아서 커피와 맛있어 보이는 빵을 골라 먹었다. 맛있었다. 입속은 행복을 느꼈지만, 내 머릿속은 아득했다. 빵집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죽음이 있었고, 지금 여기는 커피와 빵이 있었기 때문이다. 입속의 커피향과 빵의 달달함은, 어머님께 보였던 나의 마음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커피만 마시고 이내 일어섰다. 나의 마음은 진실이었다고, 증명할 필요도 없는 것에,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상황에서 속수무책인 나는, 커피를 마시며 아버님과 어머님을 생각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 이후 뭐가 바빴는지 어머님께 전화를 못 드렸다. 어머님의 미소와 사투리 섞인 말투 그리고 웃음소리가 보고싶고 듣고 싶었다.

올해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찾아 봬야겠다. 

내 전화기에는 아직 아버님의 번호가 저장 되어있다. 

물론 아버님은 전화를 받으실 것이고, 

언제나처럼 내가 좋아하는 미소로 나를 반겨주시겠지. 

그리곤 언제나 그러셨듯이 말씀하시겠지.

“원보씨~ 하이!”

어쨌든 크리스마스는

기적이 일어나는 날이니까.

4. 나는,

재작년 가장 친한 친구의 부고를 듣고 망연했던 적이 있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중 전화기 건너편에서 울먹이던 목소리가 내게 물었다, 넌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지. 부고 소식을 알리느라 내 슬픔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한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선배와 동기의 얼굴을 보면서, 그때 이후로 매일 같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슬픔은 잊어도 될 거라는 것을. 

첫 여행지에서의 어색함과 존경하던 목사님, 

살 같던 친구와의 긴 이별에도

나는

잘 지내고 있어. 

Credit 에디터 윤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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