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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비밀 깝니다! : 패턴 일러스트 편

업계 비밀 깝니다!

  새내기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업계에 대한 환상과 좋아하는 일을 향한 희망으로 홀로 서기를 선언한다. 새내기들은 경험을 통해 일러스트에도 여러 장르가 있으며 각 장르마다의 특성이 다름을 배워 나간다. 하지만 홀로 일하는 프리랜서의 특성상, 진입하고자 하는 분야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알 길은 흔치 않다.

  특히 작업 중 현타를 부른다는 업계의 관행들은 누군가를 통해 ‘그렇다더라~’하는 카더라 통신으로 들을 뿐, 기를 쓰고 세미나와 작가들 모임을 쫓아 다녀도 자세한 내용은 알 길 없다. 업계의 나쁜 관행은 아는 사람들만 알고 쉬쉬 하는 비밀이다. 부인할 수 없지만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지는 않은 비밀. 결국,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준비했다. 업계 비밀 깝니다.

  왜 ‘업계 비밀을 알려드립니다.‘와 같은 공손한 문장 대신, ‘업계 비밀 깝니다‘라는 비교적 상스러운 표현을 사용하는가 묻는다면 이유가 있다. 업계의 상스러운 비밀을 벗겨서 보여주는 것, 그 나쁜 관행을 시원하게 걷어차는 것이 이 꼭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일러스트 업계의 비밀들을 각 분야의 일러스트레이터의 목소리로 들어 보려 한다. 업계가 이렇게 엉망진창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나름의 생존전략도 살짝 들어보기로 한다.

1. 패턴 일러스트 편

  우선 처음으로 까 볼 분야는 ‘패턴 일러스트‘다. 이 꼭지를 맡은 나는 7년 차 일러스트레이터이자 4년 정도 패턴 디자인을 한 ’대나무숲‘이다. 활동명은 따로 있지만 나도 패턴으로 먹고 살아야 하기에 부캐 하나 만들었다. 이해해 달라.

  패턴은 패션, 패키지, 출판,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사용된다. 다른 일러스트 분야와 패턴이 가장 차별되는 지점은 활용도에 있다. 패턴은 ‘이어지는 그림‘이기에 매번 매체에 맞게 수정해야 하는 절차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변형도 유용하다. 모티브를 다르게 배치하여 일러스트 그 자체로서 활용도 가능하고, 배경색과 모티브의 컬러를 바꾸어 여러 버전을 동시에 제품으로 출시하기에도 좋다.

  하나의 파일을 웹에 사용할 수도, 인쇄물에 사용할 수도, 제품에 입힐 수도, 제품 제작을 위한 재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의 특성 덕에 나는 현재 패키지, 패션, 출판 그 사이 어디 즈음에 살짝 걸친 상태로 일을 하고 있다. 아마도 패턴 업계에 무릎이 젖을 정도만큼 들어 와 있는 듯하다.

이 업계에서 발꼬락 정도 담갔을 때 들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친구 생일선물 포장 할 건데, 패턴 하나 만들어주시면 안될까요?”

“크몽에서는 패턴 하나에 10만원이던데요?”

“패턴 그거 그냥 그림 몇 개 그려서 반복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때 나는 사람들이 저작권 인식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없다는 것을, 참 다양하고 참신한 방법으로 단가를 후려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내 단가를 정확하게 말하기 위한 기준을 정했다. 모티브가 몇 개일 때는 얼마, 배치가 복잡할 때는 얼마, 적용되는 제품의 사이즈, 생산량, 사용기간에 따라 얼마. 이렇게 하니 불필요한 답변을 하느라 피로감을 느끼는 일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패턴 업계에 내 발목을 적신 때는 이런 말을 들었다.

“패턴원단을 구입한 사람이 제품을 만들면, 패턴 디자이너에게는 저작권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원단은 저작권 개념이 거의 전무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동대문 원단들 중 순수한 디자인이 얼마나 되겠어요. ”

“그 작가 그림 카피가 그렇게 많대. 중국에서 카피본이 발견되었는데 원단시장에 쫙 깔려서 2차 3차로 스캔한 카피본까지 돌아다닌대. 그래서 카피한 출처도 모른대”

  텍스타일 시장은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시장이다. 그렇다 보니 뜨는 디자인을 빠르게 가져와 바로 생산해서 빠르게 판매하고 또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상황이 이러니, 생산 업체와 의류업체 디자인 실에서는 모티브 하나에 정성을 들일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호소한다. 텍스타일 실무를 가르치는 많은 학원에서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타 사의 모티브를 따 생산 가능한 리핏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교육하는 실정이니 말 다했다.

  사실 모티브를 대고 그리는 것은 표절이다. 패션 업계에서 너무나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관행이지만 이것은 분명 도둑질이다. 그래서 난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패션 쪽 패턴작업은 내가 갈 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 작업물을 카피될 수 있는 환경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콜라보 작업을 위주로 한 패키지 작업, 누가 보아도 2,3일은 꼬박 손으로 그렸을 것 같은 노동 집약적인 패턴 작업을 선호한다. 카피할 엄두가 안 나도록 진하게 영역표시를 해 두는 것이 나의 생존전략이다.

“모티브? 직접 그리지 말고 구글링 해서 괜찮은 이미지들 잘 모아놓았다가 짜깁기해서 쓰세요”

“고해상도로 원단을 스캔해서 이미지를 복구하고 리핏을 수정하면 생산 가능한 파일이 됩니다. 컬러만 바꾸거나 다른 모티브들을 섞어서 자기 패턴으로 만드세요.”

“ 명품 ooo 그 느낌 있잖아요. 아니 분위기 말고 그거 그대로, 그거 화보에 나온 것 그대로 패턴으로 만들어주세요”

  라는 말들은 “좋아 보이는 남의 것을 훔쳐오고 싶어. 빠르고 효율적으로 훔쳐와 줘.”와 같은 말이다. 패턴 전체를 그대로 카피 했던, 모티브 하나만 카피했던, 카피는 카피다. 이미 만연하고 법적인 제제가 없다고 해서 그렇게 해도 되는 건 아니다. 참고와 카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패턴시장은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 패턴 시장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늘고 있고, 개성 있는 패턴 디자이너와 브랜드도 속속 나오고 있다. 나는 패턴을 사랑하고 패턴을 소비할 때 즐겁다. 개성 있는 패턴 편집숍들이 곳곳에 생겨나길 간절하게 응원한다.

  하지만 양질의 패턴과 그 패턴을 활용한 제품들이 나오기 위해서는 ‘패턴‘ 창작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북유럽의 패턴 시장, 일본의 패턴시장을 부러워하기만 해서는 좋은 결과물들이 나오기도, 지켜지기도 어렵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이 좁은 업계를 향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패턴 앞에서 작업과정 사진을 찍는 외국의 할머니 패턴디자이너들이 부러워서다. 패턴 업계의 씁쓸한 관행들을 부끄럽지만 까 보이고 싶었고, 걷어 차주고 싶었다. 붓과 색연필만 들고 살기에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걷어 차기는커녕 건드리기는 했나 싶지만.

  패턴 분야에 진입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이것저것 물어볼 때에, 난 이 말을 꼭 한다.

“황당한 단가를 제안 하거나 카피를 요구하는 클라이언트는 같이 일하면 안 되는 클라이언트다.”

  부디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직업윤리를 기억하기를. 주눅 들지 않고 거절을 연습해 나가길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

Credit  글쓴이 대나무숲 / 에디터 Soo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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