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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3 '초대하지 않은 기분' (2부)

<초대하지 않은 기분>, oil on canvas, 91 x 72.7cm, 2020

관조적인 사회에서는 ‘나’는 ‘네’가 될 수 없다.

4. 구경

할머니를 본 그날,

버스의 차창은 투명해서 밖을 볼 수는 있었지만 단단한 벽이 있어서 외부와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격리로써 기능하며 할머니를 관조적으로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마치 풍경의 하나처럼 별다른 감흥 없이 그냥 구경하듯이 바라보는 것.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삶을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창은, 나는 당신이 아니라는 심리적으로 안전한 거리를 만들어주었고, 서로가 서로를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 안전한 거리는 별다른 죄책감이나 윤리적인 책무를 느끼지 않고도 서로를 외면하게 만들 수 있는 충분하고도 효율적인 명분을 제공해 주었다. 서로를 구경하듯이 바라보는 사회는 어떤 곳일까.

관조적인 사회에서는 ‘나’는 ‘네’가 될 수 없다.
‘왜 나는 당신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생각해 볼 여지없이 선이 그어져 있는 곳은 ‘당신 역시 내가 될 수 없다’라는 선언이 전제 되어진 곳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선언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결론이 아닐 거라 믿는다. ‘할머니’와 ‘9살 가장’은 우리가 믿는 세계가 ‘결론’이라는 생각을 부인하는, 은폐되어온 사실로서 분명 존재하고 있으며, 역설적으로 서로의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할머니와 같이 사회적으로 외면당한 사람들은, 나에게 초대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초대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나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는 기분. 그 기분은 역설적으로 나를 반성하게 하며 조금은 이타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으로 기부금 전화를 한 그날처럼 말이다. 

기부라는 행위의 동기와 의도는 중요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좋은 마음으로 했든지, 그렇지 않은 마음으로 했든지 간에 수혜를 받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환영한다. ‘세탁왕’ 이건희씨가 탈세의 목적이든 이미지 메이킹의 목적이든 간에 세탁비용으로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면 한쪽 눈 정도는 감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5. 이 만원

<사랑의 리퀘스트>에 처음으로 전화를 건 이후로, 종종 기부를 해왔고, 현재는 나눔의 집에 매달 20,000원 정도를 후원하고 있다.

겸손은 미덕이지만 기부에 있어서는 예외라 생각한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드러내놓고 알리기보다는 우연하게 알려졌을 때, 사람들에게 더욱 칭송받기 마련이다. 그런 관습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기부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조용히 몰래 한 선행도 존경스러운 일이지만 좋은 일은 알리고 독려하며 함께하는 것이 이제는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어려운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 스스로를 인류애가 있는 사람처럼 행세하는 것도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구체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실천하는 데 오래 걸렸고 그 미적미적의 시간동안 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받을 수있는 혜택의 기회는 사라졌다. 스타벅스 커피를 살 수 있는 돈을 아껴서 기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서 기부도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훌륭한 사람되자고 기부를 하는 것도 아니며 그럴 일도 없다. 그 사람들에 비해 난 너무 염치없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나 역시 빈곤한 환경에서 태어날 수 있었고, 그 사람들 역시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주어진 환경에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기부는 나에게 하는 구원행위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1년이면 나는 사고 싶은 책 몇권을 ‘포기’하는 대신에 수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할머니가 전동식 리어카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이 정도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Credit 에디터 윤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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