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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4 '이럴 때 생각나' (2부)

<이럴 때 생각나 : pm 4>, 캔버스에 유채, 목탄, 117 x 91cm, 2020

나는 그때 이후로 지구는 인간에게 과분한 곳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4.

버트런드 러셀이 쓴 시위의 역설이란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특정한 단체가 자신들의 목표를 관철시키고 나면 더이상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 단체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관철되어서는 안된다는 역설이다. 

그 단체까지 갈 것도 없이 나부터 이 역설의 본보기가 되었다. 자유의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한 것이었다. 용감하던 멜 깁슨은 온데간데에 없어지고, <어바웃 어 보이>의 돈 많은 백수인 윌이(난 돈이 없지만) 되어 빠삐용을 멍청이라고 비난하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튼 그날도 빠삐용을 욕하고 있었다. 이미 올빼미가 된 나는 새벽 2시에 머리를 감고 있었는데, 옆구리 쪽이 뻐근해 왔다. 머리 감는 허리 각도가 안좋은가.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점점 더 뻐근함이 조여오더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새벽에 거실에서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데굴데굴 구르며 이렇게 저렇게 자세를 바꿔봐도 고통은 완화되지 않았다. 10분여의 사투를 벌이는 동안 너무 아파 저절로 눈물이 났고,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엄마와 아부지를 깨웠다. 나 응급실 가야 할 것 같어. 

어기적 걸으면서 응급실에 도착하고 나니 고통은 씻은 듯이 없어졌다. 이런저런 검사 후 받은 결과는 요로결석. 극심한 고통에 비해 참으로 민망한 병명이었다. 요로결석… 요로결석이라니. 

자유를 쟁취해낸 용감하던 멜 깁슨은 빠삐용이나 욕하던 백수인 윌이 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요로결석 환자까지 되었다. 영화 속 윌은 돈이라도 많았지. 당시 제주도에서 한 달간 머물 예정이었기에, 풍요로운 제주생활을 위한 긴축재정 중 이었다. 매달 나가는 고정지출만으로도 곤란한데 요로결석 CT촬영을 비롯한 검사비에 수술비는 계획에 없던 비용이라 심란했다. 그 순간, 먼 제주의 돌하르방이 내 귓가에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꺼져

하지만 인생은 정말이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술(시술이 맞긴 하지만 극심했던 내 고통에 어울리는 단어는 오직 ‘수술’뿐이다. 요로결석 따위가 아니라!)을 하고 두 곳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나는 내가 들어놓은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래전 엄마가 들어놓은 거였다. 미소천사는 엄마가 15년 전에 들어놓은 오래된 ‘삼성생명 신바람 보험증서’에서 손짓했다. 약관을 보니 내가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끽해야 50만원 정도 되어 보였지만, 결론적으로 보험회사는 나의 극심한 고통에 대한 화답으로 500만원이라는 거금을 안겨주었다. ATM 앞에서 신바람이 난 나는, 다음 생에도 꼭 이명숙 여사 아들로 태어나겠다고 다짐을 했다. (후에 엄마에게 들은 답변은 ‘지랄마’였다. 엄마도 참). 빠삐용의 마음은 오직 나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 

득의양양해진 멜 깁슨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나는 호기롭게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한 곳은 제주도 오른쪽 옆구리, 그러니까 인간의 신체로 따지자면 대장에서 맹장으로 이어지는 상행결장이 위치한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의 연수원이었다. 상행결장은 소속 작가들과 임직원들을 위한 시설이었으나 우리가 방문한 시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 둘과 관리소장님, 그리고 프랑스어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던 푸들 한 마리가 다였다. 

이곳에서 한 달간 지낸다고 생각하니 금방 정이 들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호젓함을 기대한 나의 여행에 타당성을 부여해주었다. 소란한 도시에서 지내다보니 온갖 감각들이 뭉툭해져 별다른 생각도 없이 살고 있던 나에게 제주도에서의 한 달살이는 참기 힘든 오줌보와 같았다. (그만큼 가고 싶었단 얘기다)

그렇지만 기대와 달리 제주도에서의 하루하루는 무척이나 지루했다. 매일매일 느지막이 일어나서 밥먹고 커피마시고 그림그리다가 산책이나하는 것이 전부였다.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버스 시간표는 사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전혀 맞지가 않아서 실연당한 사람처럼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 것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도 거의 6km정도 떨어져 있는 탓에 우리는 그냥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금욕주의자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1999년 하도리는 장수마을로 지정되었는데, 나는 버스시간표와 슈퍼마켓이 장수와의 모종의 역학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자 불편한 생활에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즐거워지기까지 했다. 내가 좋아했던 일중 하나는 프랑스어 비슷한 이름을 가진(나는 그냥 럭키라고 불렀다) 강아지랑 동네 여기저기 골목을 산책하는 거였다. 럭키는 회장님이 애지중지하던 녀석이라서 함부로 산책을 시키지 않았었다. 그런 사실을 알리가없는 나는 매일 데리고 나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게 내버려두었다. 한번은 한사람 정도만 지나갈 수 있는 곳을 우리 둘이 나란히 걷다가 럭키가 나에게 밀쳐져 길 옆에 있는 2미터 깊이의 논에 빠졌다. 당황한 나는 우물주물하고 있었는데 럭키가 몇 번의 시도 끝에 뛰어올라와 나에게 안겼다. 그 행동에 눈시울이 붉어진 나는 도시로 올라가면 강아지를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6.

한라산 등반, 비 오는 날 걸었던 3시간 동안의 사려니숲길, 버스 시간표가 맞지 않아 숙소까지 20km 넘게 걸었던 일 등은 한낱 이야깃거리로만 남지 않았다. 도시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불편함들은 나에게 지워져 있었던 일상을 회복시켜주었다. 불편함이 주는 번거로움은 내 몸의 본래의 기능들을 새삼스럽게 알게 해주었고, 나의 감각들을 자연에 맞게끔 새롭게 정렬시켜 주었다. 

물론 제주도에서도 소란함은 있었다. 파도소리, 돌들이 굴러다니는 소리 그리고 매일 아침 숙소 앞에서 풀을 뜯던 말발굽소리들 말이다. 나는 그때 이후로 지구는 인간에게 과분한 곳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먼 미래에 아무도 없는 행성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꽤 근사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나는 우주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지구에 비할 바는 아니다. 훌륭한 해변을 가지고 있는 제주도, 이런 지구의 한구석만 봐도 우리가 살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지 않을까.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가, ‘지구는 이제 틀렸으니 다른 곳을 알아봐야해!‘라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면, 나는 인류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식을 것 같다. 폴 뉴먼의 말대로 ’집에 최고급 스테이크가 있는데 왜 밖에서 햄버거를 먹는지 이해가 안된다‘라는 비유를 여기에 써도 될까. 

제주도 우도에 큰 리조트가 들어선다는 기사를 보았다. 내가 자전거를 타던 당시의 우도에는 큰 건물이 없었다. 나는 우도의 명물이 땅콩에서 리조트로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무래도 우도는 땅콩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나는 햄버거보다는 스테이크가 좋고, 리조트 보다는 땅콩이 좋다.

퇴사에서 요로결석을 거쳐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나의 지난했던 과정은 이제와 돌이켜보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심을 하고나면 인생은 어디로든 굴러가게 마련이지만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싶다면 우연을 믿고 저질러 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지금은 내가 어느 곳으로가고 있는지 약간은 알 것 같다.

Credit 에디터 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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