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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5 '바다를 읽는 집' (1부)

<바다를 읽는 집 >, oil on canvas, 117 x 91cm, 2020

‘짜증’이라는 단어를 금지한 것은 짜증이라는 얄팍한 한 단어에 손쉽게 자신의 감정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게 함이었다.

1. 투수의 물감

물감을 바르는 일은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고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그림이 말을 걸어온다. 이 선은 좀 이상하지? 브라운 옆에 보라색은 별로네. 농도를 더 옅게 하는게 어때?자자 힘 좀 내보라구. 투수와 포수가 사인을 주고 받으면서 최종 구질과 던질 위치를 조정하는 것과 같이 물감을 섞고 바르는 일은 던질 구질을 정하는 것과 같다. 한 번 던진 공은 되돌릴 수 없기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듯이 물감을 바르는 일 역시 만전을 기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9회를 완투 해야하는 시합인 것이다. 지금 바른 물감이 삼진을 잡아낼지 아니면 홈런을 맞을지는, 물감이 마르면 알게 될 것이다.

2. 쿡스하펜

2017년 여름. 독일과 런던을 다녀왔다. 당시 독일에 체류 중이던 작가님의 초대가 있었는데, 가, 말어, 가, 말어. 하다가 진짜로 가게 되었다. 첫 목적지는 독일의 어항도시인 쿡스하펜으로 독일 사람도 잘 모르는 곳이라고 했다. (나는 왜 시골만 다니는가) 11시간의 긴 비행과 약 2시간의 기차를 타고 도착한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이 차창 밖으로 보였다. 지구 반대편의 머나먼 이국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밤늦게 숙소에 짐을 풀고 주방에서 모이기로 했다. 공간이 주는 낯설음이 피부로 와닿지 않았는데, 일본에서 보았던 양변기에 얕게 고여있는 물이 독일에서도 똑같은 것을 확인하고는, 비행기도 아니고 기차도 아닌, 화장실에서야 비로소 나는 먼 곳에 왔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주방에는 동행과 작가님 그리고 건장한 독일 남자가 앉아있었다. 이름은 율리히라고 했다. 율리히와 작가님은 간단한 맥주와 곁들일 안주 및 음식을 준비해 주었고 나는 쿡스하펜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밤은 서울과 이국의 공간을 하나로 이어주었다. 술과 소시지를 먹는 사이 작가님과 율리히의 대화를 들었는데(아니 보았는데) 현재 머물고 있는 레지던시에서 같이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아니, 작가님 통역으로 주고받으며) 나는 율리히를 관찰하고 있었다.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내 취미 중에 하나다) 그는 4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60대였다. 게다가 활발한 연애 사업중이셨고, 작업 역시 노회하다기보다는 한창 그림에 탐구하는 작가처럼 작업에 물음표가 여기저기 보였다. 한마디로 그는 전혀 꼰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꼰대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는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보통 나이로 구분하는 것 같은데, 내 기준에 따르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란 타인의 취향이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이 맞다고 확신하는, 그래서 무례한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다. 나이를 기준으로 무엇이든 편가름하는 것은 어떤 것에도 일괄적으로 시험을 보는 것과 같다. 손쉬운 방법이란 얘기다. 김영하 작가가 자신들의 학생들에게 ‘짜증’이라는 단어를 금지한 것은 짜증이라는 얄팍한 한 단어에 손쉽게 자신의 감정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게 함이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향해 ‘꼰대’라고 말하는 것은 비난조의 의미로 표현하기에는 상당히 손쉬운 단어이자 스스로에게 경제적인 단어다. 말의 의미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비난함과 동시에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여기게 만드니까. 하지만 그것은 내가 편협한 사람이라는 반증에 불과하다. ‘꼰대’라는 한마디로 정의 지어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지 경험이 있을 뿐이다. 단어의 오용은 누구라도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나는 간단한 단어 뒤에 숨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날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율리히가 새를 그리는 것을 그의 어깨너머로 보았던 일이었다. 그의 모습은 어쩐지 저녁에 읽은 에세이의 한 페이지와 닮아 있었다.


2부에서 계속

Credit editor 글작가, 화가 윤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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