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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6 'don't be so serious' (1부)

<don’t be so serious >, oil on canvas, 100 x 80.3cm, 2020

삶이 그렇듯, 우연은 필연을 가장해서 다가왔다. 

1.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은 주말이 오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주말이 지나가고 있었다.따뜻한 오후 4시의 햇볕이 적당한 온도로 나를 데워주고 있었고, 나는 무한대의 시간을 손에 쥐고 공허한 낮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계단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의 밝아 보이는 모습에서 애써 그 이면의 모습을 추측하려던 것은, 아마 내 마음이 공허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전까지 뭐 하고 살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지냈는데 하필 내가 좋아하는 오후 4시에 그런 생각이 들다니. 이건 무척이나 심각한 문제였다.

2.

어릴 적에 미술유치원을 다녔었다. 엄마는 나를 왜 그리로 보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좋았다. 그 나이때의 꼬맹이들이 다 그렇듯이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다. 집에 친구들이 놀러오면, 스케치북을 펴들고 연필로 반을 그어서 나는 여기 너는 저기에 그림을 그리자고 강요했다. 친척 중에 김범룡을 닮았던 형이 있었는데 가끔씩 우리집에 놀러오면 큰 종이에다가 당시 방영하던 <만화 아서왕>을 그려달라고 졸랐다. 지금은 셋째 조카가 나만 보면 그림을 같이 그리자고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당시에는 몰랐다. 다들 그림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지.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유치원을 그만두었다. 그렇지만 나의 그림그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때는 만화책을 보면서 따라 그렸는데, 아마 그때 자연스럽게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이라든지 개념을 어렴풋이 습득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지금 내 그림은 만화에 대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당연히 과목도 미술을 가장 좋아했다. 시험기간에도 미술 공부는 따로 하지 않아도 거의 90점 이상은 맞았다. (다른 과목이 미술에 대한 나의 천재성을 너무나 상쇄시키는 바람에 내 성적표는 ‘양가’집에서조차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긴 했지만. 그나마 체육정도만이 옆에서 괜찮아, 라고 응원해줄 뿐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미술부에 가입했으나 3일만에 그만두었다. 가입 첫날 엄마와 심한 충돌이 있었다. 그때가 엄마에게 가장 심하게 대들던 첫 번째가 아닌가 싶은데, 엄마가 반대한 것은 미술을 하게 되면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양가집에서 엄마의 말을 들었다면 실소를 금치 못했을 거다.(아, 웃지 말라고요, 엄마랑 나는 심각하니깐) 아무튼 미술부를 그만두고 난 후, 딱히 마음 둘 곳이 없었고, 3년 내내 친구들과 농구만 했다. 새벽에 등교해서 야자시간까지, 마치 농구선수인 듯이 농구만 해댔다. 그 덕분에 사춘기를 별탈 없이 지나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입시의 계절이 왔고 나 역시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모하게도 철학과 지원서를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양가집’에서 퇴짜 맞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은 내가 내민 철학과 지원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제는 철학과야?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라는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철학과 지원한다고?”

“네…”

“철학이 뭔지 아니?”

“…조금 어려운 도덕..이요…”

“…그래”

체념한 사람의 대답은 신속하고도 가벼운 법이다.

3.

해서 나는 지금 계단에 앉아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것이다.

애당초 철학으로 취업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고 철학이 재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고, 철학을 공부한 것이 내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로 여길만큼 지금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밥은 먹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취미가 아니라 제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 것이다.

삶이 그렇듯, 우연은 필연을 가장해서 다가왔다. 남들 다 출근하는 동안 집에서 혼자 그림만 그렸다. 그런 날들의 와중에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현직 작가를 찾아갔고 나는, 비로소 그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양가집을 떠돌던 나는 이제야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온 듯한 기분을 받았다. 미술관을 가면 적요한 느낌에 사로잡혀서 거니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편안함을 느꼈었는데, 똑같은 기분을 그림을 배우면서 느꼈던 것이다.

훗날 내가 죽을 때 머릿속을 스쳐갈 한 장면은 방배동 작업실에서 지내던 2년 남짓의 시간들이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그 시절은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준 큰누나의 결혼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그림을 배우고 생각보다 일찍 프리랜서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지만, 그 당시의 삶은 내 눈물로 쓰여졌기에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다만, 그림으로 먹고 살겠다는 의지는 주변 사람들의 큰 우려와 혀차는 소리를 감당해야하는 일이기에 모진 세월을 견뎌왔다는 것만 이야기하겠다. 다만, 작업을 해주고 돈을 할부로 입금을 받은 것 정도만 덧붙인다(당연히 그마저도 다 받지 못했다). 다만, 일을 해주고 돈을 주지 않는 사무실을 찾아가 자기들도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들어주고 같이 짜장면을 시켜먹는 일 정도는 누구나 겪는 일이기에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다만, 그만하겠다.

Credit editor 글작가, 화가 윤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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