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월간 윤원보 vol.6 'don't be so serious' (2부)

<don’t be so serious >, oil on canvas, 100 x 80.3cm, 2020

“왜 작가가 되신거예요?”

4.

상처뿐인 영광도 없는 오욕의 세월을 건너온 프리랜서의 삶을 단호히 마감하고 직장을 다니던 중에 이태원에 있는 조그만 곳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다. 나와 공예작가님(‘가블린사이렌’이었나, 정확하진 않다) 그리고 인디밴드와 같이하는 거였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인디밴드는 전시 시작 전에 골목에서 큰 대야를 드럼마냥 두드리고 있었다. 말이 좋아 인디밴드지 마치 실기를 보지 않고 입학해서 졸업하면 자동으로 음악자격증을 주는 학교 출신의 동네밴드인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인디(독립)’밴드가 된 것 같았지만, 음악이 좋군요, 하며 엄지를 들어 보여주었다. 양가집에서 입양을 주저한 나의 ‘좋아요’를 받은 그들은 씩 웃어보였다. 물이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이었다.

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방이었기에 당연히 관람객이 없었다. 현관문은 화장실과 혼동하기 딱좋게 생겨서 급한 볼일을 찾는 사람들이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일주일 동안 전시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세상에는 급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나는 전시장에 앉아서 우리나라의 공용 화장실의 실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고,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화장실 확충에 대한 계획과 그에 따른 배수로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튼, 그날도 화장실 배관구조에 대해서 사색하고 있었는데, 한 커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화장실 아닌데요, 하던 찰나 남녀가 화장실을 같이 들어올리는 만무해서, 간만에 들어온 관람객이라고 생각한 나는 어서오세요, 하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전시장을 둘러본 커플은 내 그림인 <히든카드>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윽고 남자가 내게 말했다. 이 작품 얼마인가요? 가장 아끼는 그림이었고, 내게도 깊은 사연이 있는 그림이라서 팔 생각이 없었기에 당시로서는 팔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금액을 얘기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남자는 화장실을 나가더니, 아니 전시장을 나가더니 얼마 후에 돌아왔다. 남자는 내가 말한 액수를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얘기인즉슨, 자기는 외국계회사에서 근무중이었고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다보니 너무 지치고 힘이 들어서 우울증이 왔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잠시 한국에 들러 며칠 전에 우연히 화장실을, 아니 전시장을 들러 이 그림을 봤다는 것이다. 그리곤 이 그림을 방에 걸어놓고 매일아침 일어날때마다 바라본다면 행복할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몇 년전 사람이 아닌 상황에 크게 상심한 채, 눈이 내리는 날 리움 미술관을 찾았다. 아니쉬 카푸어라는 처음 듣는 작가의 전시가 진행 중이었고, 나는 상처로 벌어진 가슴을 안고 심드렁하게 작품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걸음이 멈춘 곳은 큰 흰 벽에 칼로 슥 그어서 벌어진 상처를 닮은 작품 앞이었다. 여러모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었지만 어쩐지 내 마음과 같아서 처음으로 예술에서 치유받은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걸까. 그 얘기를 들은 나는 속수무책으로 팔 수 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셋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고, 내내 조용하게 옆에 있던 여자는 내게 물었다.

“왜 작가가 되신거예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적이 없다고, 단지 그림이 좋아서 하다보니 화장실까지 아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여자분은 이런 얘길 했다. 자기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인데, 항상 작가가 되려고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 작가가 되는 일은 여의치 않아서 디자인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으니 작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런 얘기는 화장실이 아닌 카페에서 하는 게 더 좋았을텐데.

5.

남자분과 가끔씩 만나 커피를 마셨다. 그 후로 연락은 닿지 않았고 미국으로 아예 건너갔다는 얘기만 들었다.

우연한 만남은 나를 어떤식으로든 성장시켰다. 좋아서 되는대로 그려왔던 그림에 대한 진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고, 작가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고 했다. 그렇다고 지금도 작가라는 호칭에 맞는 모습이라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죽을때까지 작가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나보더 더욱 열심히 하는 작가들을 보면 내가 듣는 그 호칭은 거의 무임승차가 아닌가 하는 솔직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필드에서 고군분투하는 작가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자기를 외면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과감히 선택하고 꾸준히 버티어내는 그들이 정말 작가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경제적인 유무를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6.

학교 건물 계단에 앉아서 고민하던 문제는 나에게 여러모로 긍정적인 신호였다.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은,

영원히 오지 않을 주말을 기다리지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주말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나의 생각을 존중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궁리하기에도 일주일에 8일은 바쁘니까 말이다.

P.S – 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정말 궁금해서든 아니면 거리의 어색함을 감추려는 용도의 질문이었든 간에,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가 부족하나마 대답이 되었으면 한다.

Credit editor 글작가, 화가 윤원보

What do you think?

39 points
Upvote Downvote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Loading…

0

Today Artist_가지 Gajee

Today Artist_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