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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8 당신의 해변 (1부)

차를, 마시다, 2012, acrylic on canvas, 53x45cm, 2020

선택이라는 괴물은 어디를 가든지 나의 결정을 종용하고 있었지만, 두려움이 컸기에 나는 최대한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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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쉽게 지나갔고 그 끝자락에는 몸살이 남았다. 몸 져 누워 있는 내내 머릿속은 알량한 여행을꿈꾼다. 지금 나는, 전기장판 위에서 남해 어디쯤 헤매이고 있을까. 

2
남해
 언젠가, 모종의 고민이 내 인생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막 30대 중반을 향해가던 나이가 부담스러웠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었다. 마치 용 앞에 놓인 작은 기사인 것처럼 앞쪽으로 도망가자니 용이 불을 뿜을 것 같았고 뒤로 도망가자니 꼬리로 맞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옆으로 가자니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따가워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의견은 내가 하려는 방향과는 다른 곳에 서 있었고, 나는 망설였다. 망설이기는 했으나 내가 내릴 결정이 어떤 것인지 이미 나는 알고 있었기에 나의 망설임은 기만적이었다,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했지만, 누구도 쉽게 동의해주지 않았다. 간혹 동의하는 의견이 있었기는 했으나 나의 결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툭 내뱉은 말들 뿐이었다.

해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자 하는 핑계로 남해로 여행을 떠났다. 작은 기사에게 남해는 따뜻했다. 강진의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동백꽃이 떨어져 바닥에 피었다. 꽃은 두 번 피는 듯했다. 비가 오는 초당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툇마루 한 곳에 자리를 잡고서 내내 연못을 바라만 보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사람들이 지나간 후 였고 비로소 다산초당은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배지는 아늑했지만, 나는 하찮은 고민을 안고서 잠시 들린 관광객이기에 유배자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고민이 너무 큰 나머지 여기 먼 곳에까지 머리에 이고 온 나는 유배자의 마음까지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으니까. 

 늦은 밤 강진을 떠나 보성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국도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을 보란 듯이 내 앞에 펼쳐놓았다. 고민은 어디든지 나를 따라다녔다. 보성녹차밭을 산책하는데 삼삼오오 다니면서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사는 게 다들 편하신가봐’라는 밑도끝도 없는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면 옆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고민이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보성의 특산물(?)인 녹차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고민 맛이 났다. 선택이라는 괴물은 어디를 가든지 나의 결정을 종용하고 있었지만, 두려움이 컸기에 나는 최대한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싶었던 것 같다. 특산물인 고민 맛 아이스크림을 앉아서 두 개째를 먹고 난 후 다시 집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으나, 얕은 여행만으로는 ‘그래 결정했어!’와 같은 드라마틱한 용기는 나에게 생기지 않았다. 나는 더욱더 쪼그라들어 결정의 시간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고속도로는 한산했고 네비게이션은 내 마음도 모른 채 목적지로 가는 최적의 거리를 알려주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운전하고 가는데 머릿속에서는 불현듯 한 단어 혹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서산마애삼존불상’

 왜 그곳이 떠올랐는지 지금도 모른다. 백지에 점을 찍듯이 어떠한 맥락도 없이 떠올랐고 집에 올라와서도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며칠 후 나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당시는 뭐라도 나에게 용기를 주는 것들을 찾아 다니고 있는 중이었기에 (성과는 거의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거니와 미신으로 점철된 나의 성향도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왜인지 모를 서산을 향해 다시 한번 길을 나섰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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