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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8 당신의 해변 (2부)

차를, 마시다, 2012, acrylic on canvas, 53x45cm, 2020

나만의 ‘해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해수욕장의 해변에서 침이나 뱉고 다니지 않았을지,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3. 해변

나는 승자에게는 크게 눈길이 가지 않는다.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샴페인이 터질 때 한쪽 구석에서 눈을 떨구고 있는 소외된 자들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덕훈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자폐증이 있었다. 철딱서니 없는 녀석들은 자기보다 ‘모자라’ 보이는 그 친구를 놀려댔다. 이야기했다시피 (이를테면) ‘소외된’ 사람들은 내 눈길을 끌었고 나는 이내 덕훈이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나와 친해진 이후로는 ‘모자란’ 녀석들의 괴롭힘은 덜 해졌다. 덕훈이는 전보다는 한결 편해 보였다.

중학교 3년 때에도 같은 반에 역시 자폐가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역시나 ‘덜떨어진’ 녀석들은(무리짓기 좋아하는 엄석대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바보들이다) 그 친구를 상당히 괴롭혔다. 하루는 반에서 뒷자리에 앉아 힘을 좀 쓴다는 녀석들이 광훈이를 괴롭히고 있었다. 광훈이는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고 있었고, 주변에서 애들은 지켜만 보았다. 그중에서도 주동적으로 괴롭히는 덜떨어진 것들은 웃음을 띤 채 광훈이를 발로 차면서 괴롭혔다. 나설 용기가 없는 나는 눈물이 났는데 옆에 있던 친구 녀석이 ‘왜 울어?’하고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덜떨어진 새끼.

용기가 없어 나서지 못한 나는 그 순간에 광훈이가 자신만의 ‘해변’을 가지고 있기만을 바랐다.

해변. 나에게 해변은, 나만이 알고 있는 장소, 아무도 없는 곳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내 안의 물기를 닦아낼 수 있는 곳, 사랍들에게서 받을 수 없는 위로를 건네주는 곳, 편지를 부쳐도 받을 수 없는 주소조차 없는 그런 곳이다.

그곳은 장소일 수도, 책이나 음악일 수도 있으며,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그런 것들을 찾아다니며, 나를 달랬다. 언젠가 엄마가 해주던 얘기가 생각난다. 무척이나 아들이 걱정되었던 엄마는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갔고 아들이 이런저런 일을 하는데 어떻게 잘 되겠냐고 물어보셨다. 점쟁이(?)는,

“아들이 아주 자제력이 강해. 힘들 텐데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있어. 그렇지 않았으면 삐뚤어졌을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물론 이 말은 점쟁이의 <아들 문제로 찾아온 부모 응대 매뉴얼>의 7번째 정도 된다는 것을 나도 안다. 살다 보면 가끔씩 서로 알면서도 모르는척하는 지혜가 필요한 법. 그래야 돈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미신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나는 ‘그 아주머니 사주 잘 보시네’하고 모르는 척 경의를 표했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 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하는지 아니면 잘라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여행과 책, 그리고 그림이었다. 나만의 ‘해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해수욕장의 해변에서 침이나 뱉고 다니지 않았을지,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그렇다고 지금이 잘되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4. 서산

서산은 친구들과 딱 한 번 오리고기를 먹으러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두 번째 방문이었다. 서산의 중심부는 아담했다. 해미읍성을 휘휘 둘러보고 작은 슈퍼에서 간단히 라면으로 요기를 달랬다. 교차로의 좁은 길을 빠져나오니, 먼 곳에 비스듬한 초록색 들판이 보였고 주근깨 같은 갈색 점들은 자동차의 속도에 비례하여 점점 소들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도시에서는 생소한 목가적인 풍경들은 영문도 모른채 내려온 나에게 조금이나마 맹목적인 여행의 이유가 되어 주었다. 소가 풀을 뜯는 모습에서 예상치 못하게 마음의 평온을 찾은 것은, 아빠에게 걸리기 직전까지 오락을 하던 당시의 나의 마음과 거의 동일했다. (쌔한 느낌에 뒤돌아 보지 않았더라면 스트리트파이터의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을 새겨넣을 수 있었을 텐데)

산중으로 약 20여분을 달리니 푯말이 보였다. 주차장 옆에는 어죽집이 있었고 목적지로 가는 길에는 다리가 놓여있었다. 다리 밑 개울가에는 아이들이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역광을 받아 더 찬란하게 빛나던 물보라들이 돌아가고 싶은 어린시절의 추억을 재현했다. 추억에 물든 채, 생각했다.

‘이 곳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서 나를 이리로 불러낸 것일까’

경건한 풍경을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해설사의 말을 들으며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혼자서 청승맞게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대면할 수 있을 거라는 나의 바람은 유명한 유적지에서는 이기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불상이 나에게 어떠한 감응을 주지는 않을까 생각을 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을 보니 내가 큰 착각을 했다는 자책감이 몰려왔다.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걸까.

그래도 이왕 왔으니 사람들이 다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도라도 하고 가야지 생각하고, 한쪽 구석에 서서 해설사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국보 84호인 삼존불상은…백제의 미소라고 불리고…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소의 느낌이 오묘하게 바뀌느은…”

나는, 조선시대 제68회 과거시험에도 출제가 되었을 해설사의 얘기를 꾹 참고 끝나기만을 기다리면서 불상이 아닌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머리를 주황색으로 물들이는 석양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해설사의 얘기가 들려왔다.

“여기 보시면 밑에 글씨가 쓰여 있어요. 뭐라고 쓰여 있냐면은,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

지금은 잊어버렸고 어쩌면 환청이었을 수도 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렇게 상투적인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말로 그랬으니까. 그 찰나의 순간은 내 몸속에 영원으로 각인되어서 내 선택을 반대하던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무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비로소 나는 지난 했던 선택에 종지부를 찍었다. 해설사의 얘기를 나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받아들였다. 내 상황을 알고 있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해설사의 입을 빌어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특히 나에게만 살짝 속삭이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그 길로 집으로 올라와 바로 작업한 그림이 이다)

5. 당신의 해변

알량하게 시작한 짧은 여행은 내 삶에 고랑을 내어서 알맞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만들었다. 갑자기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생각나지 않았다면, 직접 보러가지 않았다면, 해설사가 그 시각에 있지 않았다면. 최초의 시그널(?)을 내가 무시했더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 삶이 지금보다도 더 나았을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나의 선택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그 이후로 서산마에삼존불상은 나의 ‘해변’이 되었다. 참기 힘든 치통 앞에서 사람들의 위로보다는 알약 한 알이 간절한 것처럼, 일 년에 두어 번은 나의 ‘해변’을 찾는다.

소란스러운 삶을 견디기 위해 누구나 자신을 보살필 필요가 있다. 해변에서 우리가 만날 일은 없을 테지만, 당신 또한 당신만의 해변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분명 당신의 해변은 근사한 휴양지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광훈이 역시, 지금쯤 자신만의 해변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꼭 그러할 것이다.

Credit editor 글작가, 화가 윤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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