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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9 '무면허' (2부)

<당신이 오는 소리 >, oil on canvas, 117 x 91cm, 2021

4. pc방에서

So you drift when the days grow colder
Away from me, and won’t look back
Far away and I can’t guide you
But I am here until the Spring
pc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무엇을 할까 망설이다가 내가 가입한 그림 카페를 들어갔다. 그곳은 나름 유명한 작가들이 활동하는 곳으로 우연하게 알게 된 곳이었다. 카페에는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나 빼고는 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림을 올릴 생각은 못 하고 매일 구경만 하다가 눈 내리는 선릉역의 pc방에 오기 전 집에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림을 업로드해 놓은 상태였다. 혼자 그림을 그리다보니 내 그림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감이 잡하지 않았다. 해서, 상처를 받는다해도 여러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 게시물을 클릭하려던 찰나, 하필이면 고등학생 때 미술부 구언모 선생이 ‘너는 그림에 소질이 없어’라고 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재수없게. (할많하않)

 상처입은 기억을 떠올린채, 마치 폭탄처리반이 된 것같은 심정으로 게시물을 클릭했다. 거기에는 폭발음 대신에 이런 댓글이 달렸있었다. 

 “스타일 좋으시네요”

 짧은, 이 한 문장은 관람석에 앉아만 있던 나를, 비로소 출발선에 세웠다. 

 그 후로 종종 그림을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긍정적인 반응들을 보면서 약간의 자신감을 얻은 나는 다른 클럽에도 가입했다. ‘스튜디오**’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곳은 좀더 순수미술에 가까운 성격을 가진 곳이었다. 회원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에도 대부분 전공자들이 그린 것같아 보이는 작품들이 즐비하게 올라와 있어서, 비전공자인 내가 그림을 올려도 될까 싶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친척하고 그림을 올렸다. 올린 그림들의 대부분은 댓글이 달리지 않았다. 간혹 댓글들이 달리긴 했는데, 그마저도 ‘혹시 요시토모 나라랑 무슨 관계이신가요?라는 조롱조에 가까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댓글에서도 답글을 달았지만 다시 한번 지면을 통해 이야기 하자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요시토모 나라 맞고,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도 맞다. 내가 볼 때 다른 작가들의 그림과는 다르게 요시토모 나라는 작업으로 재밌는 것을 다하고 있는 듯 해보였으니까. 해서, 나도 꼭 저렇게 해보고싶다, 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니 어떻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요시토모 나라의 캐릭터 성과 장난끼, 반항심을 좋아하고 장자끄 상뻬의 수려한 뎃생과 통찰력 있는 위트를 좋아한다. 그리고 물 흐르듯 부드러운 디즈니 캐릭터들의 라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됐지?

 그런 모멸과 자격지심의 나날을 보내던 중, 스튜디오** 운영자에게서 한 통의 쪽지가 왔다. 

 5. 선수입장

 내용은 이랬다. ‘새로 개관하는 미술관 측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데 귀하의 그림을 보고 싶으니 포트폴리오를 보내줄 수 있느냐’

내가 좋아했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나는 ‘왜’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미술관에서 왜 내 그림을 보고 싶어 하는 거지? 

어쨌든 나는 그림을 바리바리 싸들고 비오는 날 홍대에 위치한 운영자들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나를 맞이한 운영자들은 눈이 휘둥그레 졌는데 설마 그림을 가지고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대부분은 팸플릿을 만들어서 보내주는데,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 그림을 들고 왔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분위기를 파악한 나는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프로는 아니더라도 초짜티를 내고 싶진 않았는데, 마치 유유히 헤엄을 치다가 펄쩍 뛰어올랐는데 하필이면 그곳이 어부의 그물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참돔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나는 얼굴이 빨개진채로 몇마디 주고 받고는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그림을 놓고 나왔다. 비오는 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참담한 마음을 지닌 채 여러가지 상념이 떠올랐다. 내가 전공자였으면 이런 수모는 없었을텐데. 당시 나는 직진만 할 줄 알고 깜빡이는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무면허 운전자와 별다를바 없었다. 예전에 한참 구직 중일때, 나를 불합격시킨 회사의 인사담당자는 이런 메일을 보냈다.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나 회사의 여건상 채용하지 못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더욱 발전한 회사로 거듭나서 다음 기회에 귀하와 꼭 같이 함께 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순진무구했던 나는, 정말로 믿었다. 메일에 적혀있던 내용을 누나에게 얘기했더니, 한마디 했다. ‘시끄럽고, 라면이나 끓여’

 며칠 후, 라면만큼은 기가막히게 끓일줄 아는 내게 스튜디오**의 운영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가님의 훌륭한 작품은 이번 전시 기획의도와는 맞지 않아 함께하지 못할 듯 싶습니다. 다음에 함께 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이제는 안다. 이 말은 라면이나 끓여먹으라는 얘기인것을.

 세상이란 그런것이지 하며 별다른 상심도 없이 홍대에 있는 머나먼 스튜디오**의 사무실로 그림을 찾으러 갔다. 나는 그림만 받고 빨리 나오고 싶었으나 왠지 모르게 그들은 나에게 계속 말을 붙였다. 하나마나한 얘기들을 주고받다가 그중 하나가 이런 얘길했다. 

 “전공을 안하셨다고요? 저희는 홍대출신 선배님인줄 알았는데..”

드라마 미생을 보면 극중에서 장그래의 한마디 말로 인해 박대리의 등 뒤에서 날개가 펼쳐지는 장면이 있다. 

저 말이 내개 날개를 달아주지는 않았지만 어정쩡하게 출발선에 서 있는 내게 ‘너도 선수잖아’라는 자격을 부여해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홍대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게 있던 전공에 대한 자격지심 같은 것은 모조리 완벽하게 사라졌다. 오히려 무면허라는 타이틀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해온 방향이 틀리지 않았고 지금처럼 꾸준히 작업을 하면 되겠다, 라는 확신이 들었다. 

6. sing in the rain

나중에 알았지만 그 미술관 전시에 뽑힌 작가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운영자들이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미술계의 생리에 대한 애잔함이 들었다. 물론 그들의 그림이 좋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중 한 작가는 아직 활동 중인데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뭐랄까, 나랑 헤어졌으면 좋은 남자를 만나야지 어디서 굴러먹다 온 사람을 만난 전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건투를 빈다. 

 그림을 돌려받고 작업실을 나서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폭우 속으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나는 비오는 날이 정말 좋아”


Credit editor 글작가, 화가 윤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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