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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생계를 위한 외주와 개인작업 병행하기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느슨한 프리랜서 연대를 지향하는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free,not free)의 프리랜서 창작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나보세요. 

  ‘창작하는 프리랜서’ 모임에서 가장 오래 고민한 주제는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과 개인 창작을 어떻게 병행할 것인가였다. 어떤 이는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과 개인 창작을 전혀 다른 분야로 세팅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전에 출근해 이른 오후에 퇴근하는 사무직에서 일하며 늦은 오후부터는 그림을 그리는 것. 또 다른 이는 창작의 스타일에 변주를 주었다. 상업적으로 잘 팔릴 그림 스타일로 계정 하나,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담긴 그림 계정 하나. 긴 이야기 끝에 우리가 얻은 답이라곤, 어쨌든 지금 우리는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과 개인 창작을 병행할 수밖에 없으니 체력과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두마리 토끼를 잘 잡아보자는 뻔한 결론이었다.
 

세 가지 프로젝트 폴더

 내 구글 드라이브 ‘프로젝트’ 폴더를 클릭하면 다시 세 개의 폴더가 나타난다. ‘외주 프로젝트’, ‘협업 프로젝트’, ‘개인 프로젝트’ 프로젝트를 나누는 기준은 명확하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은 주로 ‘외주 프로젝트’에 들어가고, 당장 돈을 버는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누군가와 함께 창작하는 프로젝트가 ‘협업 프로젝트’, 그리고 나 혼자 하는 창작 프로젝트가 ‘개인 프로젝트’에 속한다. 

 나는 지금 네 개의 프로젝트를 굴리고 있다. 외주 프로젝트로 모 기관의 책자를 만드는 일, 또 다른 기관의 문화행사를 홍보 및 기획 컨설팅 하는 일을 한다. 협업 프로젝트로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운영하고 개인 프로젝트로 매거진 <프리낫프리> 제작과 관련된 강연과 청탁받은 원고 쓰는 일을 한다. 개인 프로젝트에는 <프리낫프리>와 연결되지는 않지만, 글쓰는 창작자로서 쓰고 싶은 소재의 글을 쓰는 일도 포함된다. 이 중에서 내 생계를 책임져주는 일은 당연히 외주 프로젝트다. 1년 매출의 80% 이상이 외주 프로젝트에서 나온다. 반면에 협업 프로젝트와 개인 프로젝트에서는 수익이 아예 발생하는 않는 달도 있고, 가끔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용돈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으로서 외주 프로젝트와 창작자로서 의지를 다지는 ‘협업 프로젝트’, ‘개인 프로젝트’를 병행한다.  

 내가 선호하는 일의 우선순위와 현실적인 ‘돈’의 개념에서 일의 우선순위는 달라진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매거진 <프리낫프리>를 만드는 일이지만, <프리낫프리>를 만드는 나를 먹이고 재우기 위해서는 생계비를 벌어다주는 외주일이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할 수밖에. 결국 온 하루를 외주 프로젝트를 쳐내며 보내는 일수가 늘어난다. 분명히 오늘 매거진 <프리낫프리> 원고를 쓰기로 했는데, 아침에 클라이언트 메일에 답장을 하고 외주 원고를 쓰고 그 외 자잘한 이슈에 대응하고 나면 어느새 밤이 된다. 밤의 무게는 온몸을 짓눌러 결국 침대에 나를 눕힌다. ‘오늘은 충분히 할만큼 일을 했어. 물론, <프리낫프리> 원고는 못 썼지만, 내일 쓰자. 내일은 조금이라도 쓰자.’ 나에게 중요한 일을 끝내지 못하고 노트북을 접었지만, 죄책감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나는 어쨌든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계속 개인 프로젝트를 미루고만 있을까? 지속 가능하게 개인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놀지 않았다. 일을 했다. 그 일이 당장 현금흐름을 만들어주는 외주 프로젝트였지만, 어쨌든 일을 하긴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죄책감이 일렁이겠지만, 나는 일을 했으므로 정당하게 쉴 자격을 얻는다. 그러므로 노트북을 켜 일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이미 일할 의지는 외주 프로젝트로 모두 소진한 후다. 외주 프로젝트보다 강제성이 약한 개인 프로젝트는 그렇게 미뤄진다. 외주를 하며 의지를 소진하고 외주를 열심히 했다는 성취감에  정작 중요한 일들을 하나 둘 놓치고야 만다. 

창작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50:30:20′

 외주와 협업 프로젝트(전시)와 개인 창작(프리낫프리 제작)일이 빼곡하게 하루를 채웠던, 동시에 많게는 7개의 프로젝트를 돌리던 시절 나는 규칙을 만들었다. 하루의 일 에너지를 50%는 외주 프로젝트에 30%는 협업 프로젝트, 20%는 개인 프로젝트에 투입하겠다고. 대략 이런 식이다. 마감이 명확하게 있는,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있는 외주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처리한다. 그 날의 급한 외주 일을 마치면, 협업 프로젝트에서 필요한 일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 프로젝트를 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외주 프로젝트에 투입한 에너지와 시간의 50%라도 개인 프로젝트에 투입한다. 시간을 정할 때도 있다. 외주 프로젝트는 점심 먹고 퇴근, 오후 2시에 개인 프로젝트로 출근하기. 외주 프로젝트가 많을 때라면, 외주 프로젝트 퇴근 시간을 조금 늦추는 방식이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본다. 하루종일 외주 일을 하고 늦은 밤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편집이나 매거진 <프리낫프리> 내지 디자인을 할 때, 이건 일이 아니라 내 취미활동이라고 나를 설득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말하고 싶어서 팟캐스트를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매거진을 만드는 것이니, 어쩌면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즐겨서 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헤이조이스에서 루나파크 홍인혜 작가님의 강연에서 작가님은 ‘덕질’이 나를 창작하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회사를 다니며 웹툰을 그리고 시를 쓸 수 있었던 건, 웹툰과 시가 일이 아니라 ‘덕질’이며 ‘취미’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따지면 일의 의지를 외주에 불태웠더라도 개인 창작이 가능하겠지. 창작의 의지, 좋아서 무언가 할 의지는 아직 남아 있으니까. 

 비수기는 개인 창작에 몰입할 기회다. 프리랜서로 다년간 일하다보면 나름대로 성수기와 비수기 패턴이 그려진다. 비수기에는 개인 프로젝트에 집중한다. 쓰고 싶었던 주제의 글을 쓰고, 모임을 주최한다. (프리낫프리를 비수기에 만들겠다고 2년째 다짐하지만, 프리낫프리는 만드는 기간이 1년 정도라 비수기에 시작해 성수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비수기에 개인 창작을 하면 좋은 점은 외주 일이 없을 때도 몰입할 일이 있다는 점이다. 하염없이 일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자괴감에 빠지기 쉽지만, 내 프로젝트에 몰입하면 – 그것이 돈을 만들어내는 것 여부와 관계 없이 – 가장 자율적이며 주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충만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지난 해, 친한 프리랜서와 ‘금요일에 만나요’ 모임을 결성했다. 혼자 하는 개인창작이 계속 후순위로 밀리자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연합이다. 금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모여 일을 한다. 이때 하는 일은 꼭 개인 프로젝트여야 한다. 개인 창작이 후순위로 밀리는 이유는 족쇄가 없어서다. 외주는 돈과 마감이라는 족쇄가 있다. 협업 프로젝트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양심이 족쇄다. 그러나 개인 창작은 그런 족쇄가 없다. 해도 해도 안된다면 족쇄를 채운다. <프리낫프리> 2호를 만들던 중 프리낫프리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안그래도 바쁜 와중에 웬 뉴스레터인가 싶지만, 나는 매거진 <프리낫프리>를 만들 추진력, 강제할 족쇄가 필요했다. 뉴스레터는 그러니까 독자들에게 보내는 업무 보고 같은 것이다. 상사에게 업무 보고를 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일을 진척시키듯 나는 독자에게 매거진 <프리낫프리> 제작 현황을 보고하기 위해 매달 조금씩이라도 일을 해나갔다. 아마 뉴스레터가 없었다면 나는 <프리낫프리> 2호를 만들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매거진 <게간홀로> 짐송님도 논문을 미루지 않기 위해 팟캐스트 ‘밀림의 왕’을 시작했다. 개인 창작이 버거워 미루는 사람들은 모임이든 뉴스레터든 팟캐스트든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내가 이 일을 할 것이라고 공표하고 족쇄를 채워 어떻게든 일을 추진하게 만드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겠다. 

내 삶의 ‘메디치 가(家)’는 결국 나

개인 창작과 생계를 위한 노동을 병행하는 삶은 프리랜서로, 창작하는 프리랜서로 사는 이상 숙명과도 같다. 물론, 아주 성공한 창작자가 되어 내 창작물이 생계를 유지할만큼의 돈을 벌어다 주면 좋겠지만, 그런 창작자는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지속 가능하게 창작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있으려면 내가 원하는 창작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창작자이자 사업가였던 서늘한 여름밤 작가는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에 출연해 명언을 남겼다. “내가 나의 메디치가예요. 서밤이 하고 싶은 거 다해~!”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과 개인 창작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 하기를 멈추기 위해서는 1번, 정말 유명한 창작자가 되어 내 창작물이 충분한 돈을 벌어오게 하거나 2번, 저축과 투자로 10억의 자산을 일궈 경제적 자유에 도달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러려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창작해야 한다. 내 삶의 메디치가는 결국 다시 나다. 

  • 본 기사는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창간호에 게재된 기사이며,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발행처인 더스토리B에 저작권이 귀속되어 있습니다. 그루그루 웹진을 제외한 다른 사이트에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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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쓴이 이다혜(프리낫프리 편집장)_프리랜서 콘텐츠 기획자 & 에디터 
 프리랜서의 느슨한 연대를 꿈꿉니다. 
–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발행인 및 편집장
–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공동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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