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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10 '아브라카다브라' (1부)

falling book, 2016, oil on canvas, 117 x 91cm

1.

독립한 지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우리집 집문서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어딨는지도 모른다. 아마, 엄마가 알겠지?

2.

녀석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본의 아니게 회사를 그만두어야할 처지가 된 것이다. 퇴근 후 나와 종종 카페에서 마주 앉아 직장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였는데, 기어코 사단이 났다. 마무리가 좋게 된 것은 아닌 듯해서 나는, 녀석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물론 친구는 선뜻 응했다.

여행을 제안한 나도 사연은 있었다. 만나던 사람과 작별하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는데 마침 자동차가 눈에 들어왔다. 혼자 되어 맞이할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나는 그만 자동차를 사게 되었던 것이다. 딜러에게 크리스마스 전에 꼭 출고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계약을 했다. 약 한 달간의 기다림 끝에 딜러로부터 자동차가 출고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탁송을 받는 대신 직접 찾으러 가겠다고 했다. 탁송료는 당시 약 19만원 정도였는데, 그 돈이면 여행도 할 겸 직접 가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해서 나는 전라도 광주까지 같이 가겠느냐고 친구에게 제안했던 것이다.

3.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진공 같은 시간들 속에서는 무엇도 이벤트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종종 약수터에 물을 뜨러 가는 것이 일상 속의 작은 여행이자 즐거움이었다. 쫄쫄쫄 물을 받으며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시원한 그늘에서 책을 보며 했던 것이 무척 좋았다.

하물며 여행을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은 친구의 마음은 오죽 반가웠을까.

해서 우리는 지금 수원역 기차 플랫폼에 서 있는 것이다. 출발하기 전 회사에 대해 분노하던 친구의 표정은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자 웃음으로 바뀌었고, 우리는 기차를 놓칠세라 단번에 올라탔다. 대학생 때 가끔씩 기차를 탔던 것을 제외하면 장거리 기차를 타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우리를 실은 기차는 춘천이 아닌 광주로 향했다.

기차는 묘한 공간이었다. 기차 좌석의 뒷 칸에 앉아서 바라본 사람들의 뒷모습은 버스에서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듯했다. 버스에서는 다들 지친 모습으로 각자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미지, 곧 귀환의 풍경이라면, 기차는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의 싯구 대로 모두들 가슴 한 켠에 설원(雪原)을 지닌 채 떠나는, 열차 칸의 갯수만큼이나 긴 귀향의 정경을 내게 보여주었다. 버스는 일상에서 놓여나기 힘든 삶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면, 기차는 그런 삶에 염증을 느껴 떠나는 공간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의 버스는 휘황찬란한 건물의 모습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그러한 시각적인 노출은 오늘과 내일에 대한 연속성을 우리의 일상에 부과함으로써, 오늘과 내일의 단절없이 오늘 있었던 회사에서의 실수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면서 내일은 좀 더 잘해야지 하는, 잘 짜여진 내일의 계획을 상기시킨다. 해서 우리는 <이터널 선샤인>의 짐 캐리처럼 무작정 결근하고 떠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짐 캐리가 회사를 결근할 때 타고 있었던 것은 버스가 아닌 기차였다)

물론 버스에서도 ’저 이번에 내려요‘같은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은 아니니 괜히 신경 쓰지말자.

기차는 사랑을 싣고 아니, 우리를 싣고 광주역에 도착했다. 차량 출고지는 지하철로 갈아타고 몇 정거장을 더 가야 했다.

차량출고지는 넓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넓어서 우주만큼 넓다고는 해야 어울릴 정도로 넓었다. 장난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친구와 나는 정문을 들어섰고 사무실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나는 친구에게 내가 산 차와 같은 모델의 자동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내 차 아니냐’

4.

담당자는 그 넓은 출고지에서 내가 산 모델과 같은 수백 대의 차중에서 별생각 없이 내가 가리킨 차를 가지고 왔다. 나는 그날로부터 자동차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넓은 우주, 하필 지구의 작은 나라인 한국의 광주 출고지에서 같은 생김새의 수 많은 차들 속에 있던, 그중에서도 내 손가락이 가리킨 그 차가 내 것이라는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게 영혼의 짝을 점지해준 신 덕분에 나는 그만 황홀경에 빠져서 담당자가 하는 설명은 듣지도 않고 인수증에 싸인을 해버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무리 황홀하다고 해서 (주)현대기아 자동차를 직접 검수도 하지 않고 인수증에 싸인부터 하는 것은 본인이 아닌 사람에게 인감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정신나간 직원만큼이나 정신나간 행동이다. 그래도 (주)현대기아가 전기차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꿰차려는 야심을 품고 있으니 주식은 넣어 볼 만하다)

머리에 이고 올 수만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산파가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듯이 갓 출고된 새 차를 조심조심 운전해서 휴게소에 들렸다. 쭈구려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아마 10년은 타겠지?’.(대부분 차를 살 때 10년은 타야지 하고 구입을 하는데, 왜 10년 일까, 상대적으로 비싼 자동차를 사는데 자기를 합리화하는 최대치가 10년은 아닐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10이라는 숫자는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상징적인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말이 씨가 된다고 10년을 탔다! 왠지 차는 10년을 타야할 것만 같았는데, 나에게 그것은 마치 밥을 남기면 벌을 받는다는 얘기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대 뒤의 무수한 스태프들의 노력이 있는 것과 같이 내 알량하고도 근사한 여행의 프레임 밖에는 언제나 ‘윤윤보’로 명명된 내 차가 있었다. 불안한 미래와 결별의 아픔, 혹독한 더위를 품은 여름날 차박, 섬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한 상황에서도 윤윤보는 믿음직한 헤드라이트를 부릅뜨고 나의 곁을 지켜주었다.

굳이 상대성 원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좋은 시간은 빨리 흘렀다. 10년의 세월만큼이나 그 사이 좋은 차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출시되고 있었다. 근사한 차들은 윤윤보와 함께한 많은 추억들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나는 마치 바람을 피우는 사람의 심정이었다. 결국 나는 수 개월간의 곁눈질 끝에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내 마음을 적신 신차를 계약하기에 이르렀고 윤윤보와는 결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이후로 윤윤보를 탈 때마다 감상적이 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약간 기만적이었던 것 같다. 윤윤보에게는 미안하지만 차를 팔 생각의 슬픔보다는 신차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컸으니까. 새 차와 함께하게 될 추억이 더욱 기대되었으니까 말이다.

1부 끝

Credit editor 글작가, 화가 윤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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