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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단가협상은 원래 어렵지만, 또 그걸 우리가 해내야 하니까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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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1을 3으로 바꿔본다. 아, 3은 좀 부담스러울 수 있을테니 2로 다시 내린다. 흠… 2로 내리니 조금 아쉽다. 다음 자릿수 숫자를 0에서 5로 올려본다. 스도쿠 하는 게 아니다. 견적서 숫자 눈치게임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는 정해진 월급이 없다. 어떤 일이 들어오면 크든 작든 적당한 단가 협상을 통해 내 노동의 가치가 책정된다. 물론 시장에서 통용되는 수준의 페이가 있긴 하다. 문제는 나와 단가 협상을 하는 클라이언트 중 시장가를 모르는 사람이 상당하다. 시장가를 알고 협상하더라도 애초에 손해보는 게임이 될 수 있다. 왜냐고? 시장에 형성된 단가가 낮으니까.

글로 먹고 산 지 8년이 됐다. 글 쓰는 프리랜서와 협업했던 에이전시 시절을 합하면 10년을 콘텐츠 업계에서 일했다. 그 사이 원고료는 얼마가 올랐는가. 인상률은 0%다. 2010년대 초반 회사에서 프리랜서에게 글을 맡길 때 그 단가 그대로 2020년대에 글 쓰는 일을 받는다. 글쎄 그림이라고 다를까? 일러스트는 오히려 단가가 떨어졌다는 의견이 많다. 20년 간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이다 작가의 살아있는 증언이다. 1990년대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을 그려 집을 샀고, 2000년대 일러스트레이터는 전세를 구했으며 2010년대부터는 월셋집을 겨우 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경쟁이 심화된 것. 재능마켓으로 포지션한 플랫폼에서 벌어진 치열한 가격 경쟁은 결국 창작자끼리 제 살 깎아먹기로 귀결됐다. 

몇년 전, 인터뷰 시리즈를 제안한 회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다혜님이 제시한 건당 원고료보다 50% 싸게 해준다는 에디터가 있어요. 물론 그 에디터는 경력이 다혜씨보다 훨씬 적긴 해요. 저희는 다혜씨가 다른 에디터가 제시한 50% 저렴한 원고료로 작업해주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허. 참. 이토록 당당하게 노동의 값을 후려치는 자는 무얼 먹고 사는 사람일까. “저는 00만원 이하로 인터뷰 기사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경력이 있거든요. 저렴하게 하고 싶으시거든 경력이 적다는 그 에디터와 작업하시는게 좋겠습니다. 다만, 차이는 느끼실 거예요.” 속으로 불이 이글거렸지만 비교적 침착하게 전화 통화를 마쳤다. 

프리랜서에게 경력이란 이토록 무용하다. 경력보다 싼 값에 쓸 수 있는 프리랜서를 구할 때가 많다. 하여 연차가 쌓일수록 연봉이 오르는 직장인과 다르게 프리랜서는 연차가 쌓여도 비슷한 돈을 벌거나 어떤 때는 더 적은 돈을 벌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세상 다 망해라. 프리랜서 노동값 후려치는 사람들 걸음걸음마다 잔잔한 불운이 가득하라!! 나무젓가락은 늘 삐딱하게 뜯어지고, 사는 가전제품마다 불량품을 고르기를!!!’이라며 세상탓과 소심한 저주를 퍼 부은들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낮은 단가의 일을 거절하기 쉽지 않다. 이 낮은 단가의 일이라도 해야 그나마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낮은 단가의 일을 받아 하면, 그만큼 내 시급은 낮아진다. 낮은 단가의 일을 받아서 정신없이 일하느라 합리적인 단가의 일을 받을 여유가 없어 눈물을 머금고 거절해야 한다면? 우리는 당장 눈 앞의 수익보다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하여, 최저 단가를 잡아야 한다. 내 삶이 일로 지배되지 않을수 있을 정도의 최저 단가. 나는 한 달을 살 때 얼마가 필요한가. 목표 저축액은? 한 달에 몇 시간 일할 것인가. 이러한 계산을 통해 내 최저시급을 정한다. 그리고 이 최저시급보다 낮은 일은 과감하게 거절한다.

단가 협상도 놓치지 않는다. 프리랜서로 외주를 받아 하면서 동시에 프리랜서에게 외주를 주는 기획자로서 제시한 금액에서 페이를 올릴 시도를 하는 프리랜서가 손에 꼽힌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기획자에게 애초에 돈을 많이 제시해달라고 따지지 말아달라. 전체 예산을 아무리 슬기롭게 배분해도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긴다. 하여 기획자는 언제나 예비 예산을 도토리 주머니에 담고 있다. 이건 무슨 의미냐? 프리랜서인 내가 기획자에게 얼마의 인상을 요구하면, 기획자는 예비 예산에서 가능한 정도의 예산을 추가 편성에 올려줄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포기하지 말자. 인상을 요구하자.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세상에 감사합니다. 열심히 일할게요.’라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면 되고 설사 거절당한다 하더라도 ‘조금 아쉽지만, 이번에는 지금 예산으로 진행해보겠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말하면 된다. 정 예산이 적다면 상대가 제시한 금액 수준에서 가능한 정도의 노동만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인터뷰 기사 5건을 4건 가격으로 해달라고 말한다면 4건만 된다고 말하는 것.

혹은 일의 파이를 키우는 방법도 있다. 비슷한 종류의 일을 1개 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가 1이라면 10개 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는 10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어차피 비슷한 종류의 일이기 때문에 숫자가 올라갈수록 하나 할 때마다 에너지는 줄어든다. 10개 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는 대략 6~7정도다. 그러면 결국 1개 일을 할 때 평균 0.6~0,7의 에너지를 들여 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면, 큰 규모의 일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콘텐츠 하나 제작이 아니라 10개 제작, 100개 제작으로 큰 규모의 일을 따서 하면 같은 일을 반복하며 일 에너지를 아끼고 그만큼 나에게 간접적인 수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때로는 큰 규모의 일을 여러 프리랜서와 나눠 하면 들이는 에너지에 비해 높은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또 하나, 협상의 힘을 가진 쪽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프리랜서에게 협상의 힘이란 어디서 나올까? 브랜드다. 대체불가능한 프리랜서는 없지만, 대체하기 어려운 프리랜서는 있다. 브랜드를 대중적인 인지도로만 생각하면 한 쪽만 보는 것이다. 브랜드는 대중적인 인지도와 일하는 업계에서의 평판을 고루 포함한다. (그래서 평소에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좋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오후 모 에이전시와 가격협상 미팅이 있다. 이 미팅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이 프로젝트에 협상의 힘을 내가 조금 더 가졌기 때문이다. 모 기관의 A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관장과 실무자의 신임을 얻었고, 해당 기관에서는 B프로젝트에 작가로 이다혜씨와 협업하는 조건을 B프로젝트 대행사에 제시했다. 키는 내쪽에 있다. 왜냐하면, 지금 이 프로젝트에서 나는 대체하기 어려운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건 합리적인 수준의 단가 기준이 전체적으로 통용되고, 그 단가 기준을 클라이언트가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프리랜서도 제 살을 깎아먹는 수준의 단가로 일하는 생태계 교란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내가 교란시킨 생태계에서 겨우 헐떡이며 얕은 숨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 본 기사는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에 게재된 기사이며,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발행처인 더스토리B에 저작권이 귀속되어 있습니다. 그루그루 웹진을 제외한 다른 사이트에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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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쓴이 이다혜(프리낫프리 편집장)_프리랜서 콘텐츠 기획자 & 에디터 
 프리랜서의 느슨한 연대를 꿈꿉니다. 
–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발행인 및 편집장
–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공동 진행자
– <프리랜서로 일하는 법>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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