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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윤원보 vol.11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1부)

leaves, 2015, acrylic on canvas, 80 x 100cm

“신 날땐 재뿌리지마”

1.

제주도의 숙소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A회장님의 전화가 왔다.띠리링.

– 숙소 앞에 있는 바닷가로 나와

그래서 나갔다.

2.

지인이었던 큐레이터 B는 자주 나를 데리고 다녔다. 사적인 모임이든 공적인 미팅 자리든 나를 동석시켰다. 나는 굳이 그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는데, K는 언젠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 원보랑 같이 다니면서 걱정된 적은 없었어.

나는 B와 다니면서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나 상황을 봐가면서 눈치껏 행동을 했는데, 까다로운 B에게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B가 하는 일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일적인 부분들 뿐만아니라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등을 그에게 배웠지만, 그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당시 내가 다니는던 회사는 홍대에 있었는데 나를 찾아온 B와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눈도장을 찍어뒀던 수제 햄버거집을 가기로 했는데 하필 휴무일이었다. 아쉬움에 일그러진 그의 미간을 보면서 그냥 대충 먹자라는 나의 말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의 미간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그는 말했다.

– 공덕동으로 가자

나는 그곳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그러자고 했다. 당신들도 그의 미간을 보았더라면 아마 ‘개미핥기혓바닥수프’라도 좋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개미핥기혓바닥수프’가 아닌 육칼이라는 칼국수 집이었다. 나는 몰랐지만 나름 유명한 식당이었는지 사람들이 많았다.

메뉴판을 보니 육칼은 5,000원이었는데 우리는 택시를 타고 약 10,000원을 내고 온 터였다. 5,000원 짜리를 먹을 거였으면 홍대 아무곳에서나 먹어도 될 일을 굳이 택시비 만 원을 내고 여기까지 온 그가 못내 못마땅했으나, 칼국수를 먹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바뀐 정도가 아니라 삶의 자세를 배웠다고 해야 할까. 칼국수는 생각보다 내 입맛은 아니었으나, (나는 그의 미간을 떠올리면서 ‘여기 맛집이네요’라고 떠들었다. 당신들도 그 미간을 봤어야 했다니까!)나는 ‘단돈’ 5,000원에 나를 존중하는 방법을 깨달았던 것 같다. (물론 개미핥기혓바닥수프였다면 그 반대겠지만) 꼭 돈이 많아야만 나를 존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많은 돈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나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는 걸을 깨달았고, 나로 하여금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요컨대, 나는 내 삶을 좀 더 단호하게 살기로 한 것이다.

3.

B는 부지런했는데 그만큼 다방면에 아는 지인들이 많았다. 지방을 같이 동행하면 꼭 아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A회장이었다.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이를테면 맨 밑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맨손으로 올라온 인물이었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가게를 위협하는 깍두기 형님들을 요리사가 깍뚝썰기를 하듯 제압하고, 일대를 정리한 후 마침내는 그 자리에 자신의 건물을 세운 것이다. 이미 사업으로 대단한 부를 축적한 그는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전무후무한 스타일을 가지고 미술계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미안하다. 전혀 확인된 바 없다) 또한 지금은 본인의 갤러리를 만들어 유명한 소속 작가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현존하는 작가들중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쯤 되면 그는 나에게 외계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즉, 그와 나는 만날 일이 1도 없었다는 얘기다.

1984년 칼 세이건이 외계인의 신호를 탐지할 목적으로 시작한 SETI프로젝트가 만들어진 지 거의 40년이 되었다. 그중 유의미한 신호가 몇 번 잡혔다고는 하지만 외계인이 의도적으로 보낸 신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신호가 한국에서 잡혔다.

그것도 K의 평범한 휴대폰으로 말이다.

 – B? 나 A회장인데 언제 어디로 와.

회장님은 자신의 빌딩에서 진행하는 귀빈 행사에 B를 초대한 것이다. (육칼을 맛있게 먹은 덕분인지) B는 회장의 초대에 나도 같이 동행하자고 했다. 마치 대기업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받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나는 좋다고 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회장의 작업실이 있었고 아래층에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작업실에서 회장의 작품설명을 듣고 식사를 하러 가는 코스였는데, 나는 그의 작품보다는 작업실에서 보았던 밖의 풍경이 더 갖고 싶었다. 미처 다 떨어지지 못하고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인 석양의 모습을 매일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자신이 세상의 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거기서 석양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세상의 왕이 된 기분을 느낄법 했다. 작업실을 둘러보고 레스토랑을 내려가니 모든 직원이 도열하며 우리 일행을 맞아주었다. 각자의 테이블에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으나, 나는 낯설음을 느꼈다.

그날이 지나고, 며칠 후 B에게서 전화가 왔다.

– 제주도 가서 한 달 정도 있다 오자.

– 숙소는요?

제주도에도 외계인이 마련한 거처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 제목인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은 최갑수 작가님의 동명의 책 제목을 인용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1부끝

Credit editor 글작가, 화가 윤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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